[사설] 어떤 선거 치를지도 모르는 채 총선 D-100일 맞게 되나
총선이 10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회의원 정수는 몇 명으로 할지, 이 중 비례대표는 몇 명이고 어떤 방식으로 뽑을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법으로는 선거 1년 전인 지난 4월 선거 제도를 확정했어야 하지만 정치권은 늘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법정 시한을 어겼다. 연말까지 잡힌 국회 본회의는 28일 하루인데, 여야는 선거법 협상은커녕 ‘김건희 특검법’만 갖고 싸우고 있다. 해를 넘겨 1월 1일이 되면 총선이 꼭 100일 남는다. 이대로면 역대 최악의 ‘깜깜이 선거’가 될 것이다.
선거 제도 개편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비례대표를 어떻게 몇 명을 뽑느냐가 핵심이다. 4년 전 문재인 정부가 여야 합의 없이 힘으로 밀어붙인 현행 선거법은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을 돕겠다던 입법 취지와는 정반대 결과를 불러 오는 부작용만 낳았다. 양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드는 꼼수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이러느니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 의석을 단순 배분하는 원래 제도로 되돌아가자는 게 국민의힘 입장이고 대다수 국민도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현행 준연동형 유지파와 과거로 돌아가자는 병립형 회귀파가 갈려 있다.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의원총회를 여러 번 열고도 결론을 못 냈다.
준연동형파는 병립형 회귀는 ‘정치 퇴행’이라고 주장하며 거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못하도록 법을 바꾸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함세웅 신부와 이부영 전 의원 등 야권 원로란 사람들은 이미 ‘진보정치연합’을 명분으로 사실상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을 준비 중이다. 시민 단체와 이른바 재야 인사 중 아직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못한 사람, 민주당 비례대표로 내세우기에는 부적합한 사람 등이 이를 통해 다음 국회에 진출할 수 있다. 이재명 대표는 당 의석수를 최대화할 수 있는 병립형을 원한다고 하지만, 준연동형파의 요구를 단칼에 끊어낼 경우 총선 득표에 불리하기 때문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눈치를 보며 시간을 끌고 있다.
준연동형 선거제는 태생부터 정략적이었다. 지난 총선 직전 공수처법 통과를 대가로 민주당이 정의당 등 군소 정당과 맞바꾼 것이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근간인 선거 규칙을 제멋대로 뜯어고쳐 누더기를 만들더니 되돌리는 문제도 유불리를 따지느라 우물쭈물하고 있다. 국민의 참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직무 유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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