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여의도 정치의 저류가 변할 것인가
헌신 비해 많은 과실 ‘586’, 낡아빠진 기득권 수명 다해
내년 4·10 총선의 화두로 세대교체론이 부상할 것인가? 신호탄은 국민의힘이 먼저 쏘아 올렸다.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전격 등판하면서다. 현실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73년생 집권당 사령탑의 탄생이다. 50세 한동훈은 21대 국회 국민의힘 평균 연령인 59.3세보다 10살가량 젊고, 61년생 윤재옥 원내대표와는 띠동갑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김종인 김병준 등 과거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서 비대위원장을 역임한 인물의 면면과 비교하면 보수 정당으로선 문자 그대로 파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한나땡(한동훈 나오면 땡큐)’이라지만 이 호들갑스런 반응은 역으로 당혹감을 반영할 뿐이다.
‘한동훈’이 단순한 간판으로 소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보수 진영에서 대통령 후보 1위를 계속할 만큼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다. 당장 이번주 구성될 비대위에 70, 80, 90년대생 일명 789세대를 대거 영입하라는 주문이 쇄도하는데다 실제 그렇게 될 확률도 높다. 정치적 변환기 때마다 나오는 ‘노(老)·장(壯)·청(靑) 조화’니 ‘경륜과 참신함의 조합’같은 식상한 동어반복이 재현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기성 정치인의 역학관계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공천에서 쇄신 바람이라도 일으키면 혐오 대상이 된지 오래인 ‘여의도 정치’에 태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인요한 혁신위원회 요구는 무시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실권을 쥔 비대위는 다르다.
정치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고 프레임 전쟁이다. 벌써부터 한동훈 등판과 동시에 부각되는 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다. 송영길 전 대표를 정점으로 현역 국회의원만 20명 이상 연루된 돈봉투 사건도 소환된다. ‘검사’ 대 ‘피의자’라는 구도가 유권자에게 어떻게 비칠지 제일 잘 아는 건 민주당 자신일 것이다. 그 확연한 보색 대비를 희석하기 위해서라도 변화가 강제될 수밖에 없다. 친명 대 비명 대립에 가려 있지만 이미 당내에선 586 청산론이 고개를 들었다. 여든 야든 ‘세대교체론’의 자장을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1971년 대통령선거 직전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을 중심으로 ‘40대 기수론’이 등장한 이래 한국정치에서 세대교체 요구가 분출한 경우는 다수 있었다. 열린우리당이 여당이던 2006년 김부겸 이종걸 김영춘 임종석 등이 당권에 도전하면서 ‘신 40대 기수론’이 대두했고, 2011년 한나라당에선 원희룡 나경원 남경필 등이 젊은 세대 전면 배치를 주장했다. 성공 여부를 떠나 그런 시도 자체가 대중 정치인으로 각인되는 계기였다는 평가는 일치한다.
한동훈은 강남 8학군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법대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한 전형적인 엘리트다. 보수든 진보든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을 지났음에도 유독 자신이 흙수저였다고 징징대는 ‘가난 팔이’가 예사인 정계 풍토에서 다르다면 다른 이력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한동훈을 부러워할지언정 시기하지는 않는다. 검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쌓은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보수정권 적폐 수사, 조국 전 장관 수사 등에서 보듯 법 앞에 예외 없다는 원칙을 지켰다. 그 대가로 전 정권에 밉보여 핍박 받은 서사도 인기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깜짝 등장한 정치 무경험자가 잠시 각광받은 사례는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한동훈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한동훈 현상’ 저류에 흐르는 국민 정서다. 바로 젊음, 실력, 탈이념으로 실현 가능한 과거와의 결별 혹은 단절, 전복에 대한 강한 욕구다. 전복이야말로 한동훈이 속한 X세대가 공유하는 가치다.
정치인 한동훈에게는 리스크도 많다. 과연 윤석열 대통령과 수평적 관계를 이룰 수 있을지가 그 중 하나다. 그 바로미터가 ‘김건희 특검법’이다. 한동훈은 윤 대통령 부인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가 “몰카 공작”이라고 했다. 그 말이 옳다 해도 명품백을 거저 받은 대통령 부인을 피해자라고 생각할 국민은 없다. 불법과 적법만으로 세상을 가르는 법률가들이 종종 일반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지는 사례는 자주 본다.
이른바 586 정치인들이 여의도에 등장한 건 1980년대 후반 절차적 민주주의가 달성된 이후부터다. 세대마다 공과는 있고 평가는 몇세대가 지난 뒤에야 가능하다. 그러나 586만큼 오랫동안 정치무대에서 집단적 위세를 누린 세대는 없다. 4·19세대와 유신세대가 천신만고를 겪고도 민주화 후 잠시동안 정치주역이었던 것과도 대조적이다. 일부 586 정치인들은 헌신에 비해 너무 많은 과실을 챙겼다. 그들이 어깨를 걸고 인의 장막을 치는 동안 586 콤플렉스가 없는 새로운 세대가 바통을 기다리고 있다. 그 도도한 흐름 속엔 기득권 연장만이 유일한 목표인 낡은 정치가 설 자리는 없다. 내년 총선이 한국 정치 버전 전환의 또 하나 분기점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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