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룡과 메가시티

정도영 생활경제연구소장·전 경기도 경제기획관 2023. 12.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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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영 생활경제연구소장·전 경기도 경제기획관

영화 ‘쥬라기공원’은 21세기 인간에게 공룡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무시무시한 입을 쩍 벌린 티라노사우루스는 영화를 대표하는 빌런 공룡이다. 1억 년 넘게 지구에 살았던 공룡을 거대한 파충류라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최근 학계에서 공룡은 조류라는 학설이 정설로 자리 잡았다. 까치 까마귀 참새와 같은 새들이 공룡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닭발과 티라노사우루스의 발은 크기만 다를 뿐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거대한 운석, 화산폭발, 기후변화는 공룡의 멸종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변화다. 공룡이 멸종한 이유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 몇몇 살아남은 공룡의 후손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새와 공룡의 결정적 차이는 크기다. 공룡은 크기를 줄임으로써 변화에 대응하고 지금까지 생존하게 되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최근 국민의힘은 ‘김포서울통합특별법’을 발의했다. 내년 총선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한 포석, 포화된 서울의 쓰레기 소각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책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걸림돌이 만만치 않다. 행정구역상 서울의 학생이 농어촌 특례로 대학에 들어가는 문제, 서울에 편입되지 않은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 등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공룡 같은 거대도시를 운영하는 의사결정 프로세스다. 자동차도 스스로 알아서 운전하는 시대에 한국 사회의 의사결정은 매우 경직된 구조로 돌아간다. 모두가 상급자의 의사결정을 기다리는 구조다. 실무자는 관리자의 입을 바라보고, 관리자는 상급 관리자의 입을 바라보고, 상급 관리자는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입만 바라본다. 각자의 직함과 업무는 번지르르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율 주행 자동차의 알고리즘보다 못하다.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서 추진하기보다는 상급자의 눈치만 본다.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경직된 수직적 조직 문화의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다. 한국 사회는 거대한 공룡이다. 공룡의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삶에 먹구름이 점점 짙어진다.

철도 선로를 점검하는 현장 근무자가 레일 전압 등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하면 안전과 정시성을 기준으로 재빨리 조치를 해야 한다.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고에 보고를 거듭해 코레일 사장의 의사결정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그때는 이미 사고가 난 이후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감과 전문성을 갖춘 현장 근무자들이다. 현장 근무자들이란 한국 사회 각 영역의 필드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다. 일하는 그들에게 권한과 긍지를 부여해야 한다. 큰 몸집에 작은 뇌를 가진 공룡처럼 조직을 확대하고 통합해 중앙의 한 명이 모든 구성원을 수족처럼 부리며 관리하고 통제하는 구조는 구시대의 산물이다. 지금은 공룡의 시대가 아니라, 새의 시대다. 김포가 편입된 서울 메가시티를 지도로 보면 그로테스크하다. 목이 긴 전형적 공룡의 모습이다. 서울 메가시티와 부울경 메가시티는 태생적으로 다르다. 서울 메가시티가 몸집을 부풀려 독식하다가 스스로 멸종하는 공룡이라면 부울경 메가시티는 기후변화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새들의 연합체다.


한국이 서울공화국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부산이 정말로 노인과 바다만 남게 되어 고독사의 도시가 된다면 이유는 분명하다. 쇠를 먹는 불가사리처럼 서울이 점점 거대해져 국가의 모든 자원을 뽑아가기 때문이다. 인구 유출은 본격적 재앙의 조짐일 뿐이다. 서울 메가시티의 이슈는 부산 구도심의 인구, 경제 문제와 직결된다. 지방 분권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어떻게 하면 서울의 대학을 나와 서울에서 번듯한 직장을 얻을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지역을 서울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까를 고민해야 한다. 생존의 차원이다. 이것이 지역 정치의 역할이다. 사람 중심의 계파 불리기가 아닌 비전 중심의 대안이 다양한 층위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공룡이 아닌 새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날 수 있다. 기다릴 때가 아니다. 날갯짓을 해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지역이 사는 길이다. 지역이 산다는 것은 내가 산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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