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설 카르텔, 정부 대책으로는 깨기 어렵다
국토교통부 주도로 발표된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의 내용이 지극히 실망스럽다. 건설안전 사고 발생 후 정부의 대책이 대부분 덧칠 위주나 규제 강화로 가곤 하는데 이번 대책은 여기에 책임 전가가 추가되었고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거리가 멀다. 주요 내용은 ▲설계·시공·감리업체 선정을 LH에서 조달청으로 이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피아 출신 보유사 수주 제한 ▲공공주택사업 민간에 개방 ▲부실, 불법 업체 퇴출 및 징벌적 손해배상 부과 등이다.
인천 검단아파트 붕괴 사고 등 최근의 사고들은 관련 업체의 책임도 크지만 현재 한국 건설산업에 내재되어 있는 총체적 부실 문제로 발생한 것이므로 무엇보다 근본 원인을 조망해야 한다.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국토해양부가 출범시킨 ‘건설산업 선진화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그때의 경험과 충정으로, 이번 대책이 본질을 외면한 채 빙산의 일각만 다루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갖고 있다. 몇 가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건설산업 조달 행정 과정의 부패 사슬 고리를 혁파해야 한다. 우선 조달청의 발주 행정이 여러 부패의 진원지가 되고 있고 여타 공공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심사위원회라는 면피성 위원회가 핵심이다. 공무원 등 발주 관련 담당자와 교수 등으로 위원이 구성되어 금전 등 로비에 강한 업체가 수주하도록 하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부와 조달청, 공공발주자는 이 문제에 대해 답변해야 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하는 먹이사슬을 혁파해야 한다.
둘째, 작은 정부 구현과 공기업의 민영화이다. 조달청, 감사원, 국토부, LH 등 우리나라처럼 거대한 공공 조직을 가지고 있는 선진국은 드물다. 영국의 감사원은 인력이 몇 명 안 되어 주요 감사 때는 민간 회계법인의 지원을 받는다. 지금 정부와 공기업의 생산성은 민간에 못 미치는데도 여전히 그 위에 군림하는 수퍼갑이다. 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는 과거에 설계, 감독(감리)을 직접 하고 공사도 직영 공사 수준으로 챙겼다. 지금 LH는 이런 것들을 하지 않고 발주조차 조달청이나 정체도 불분명한 국토안전관리원에 이양하려 하고 있다. 민간 발주자는 직접 발주를 하고 사업 성패에 대해 자신이 책임진다. 이번 대책에는 5000㎡ 이상 다중시설에 허가관청이 감리를 발주하는 내용도 있다. 이는 민간 건설의 상당 부분을 정부에서 간섭하고 민간의 자율을 훼손하는 방안이다. 자기 책임으로 우수한 업체를 공정하게 선정할 수 없거나 경쟁력 없는 공기업은 차라리 민영화해야 한다.
셋째, 감리 제도 문제이다. 사고가 나면 늘 등장하는 것이 감리의 기능 및 독립성 강화, 대가 상향 등이다.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혹은 건설과 유사한 조선업의 경우 감리가 있는가? 선진국에서 우리처럼 법적 강제 조항으로 감리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가?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가 각자 맡은 부분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선진국의 모델이다. 이 주체들이 잘못했을 때 엄중한 책임을 물으면 된다. 선진국에서는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하고 보험에 의해서 불량 공급자를 징벌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 부실 행위의 페널티는 상상을 초월하여 회사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수준이므로 설계와 공사의 품질, 안전 등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작동되는 것이다.
건설 사고에는 발주자 책임이 매우 크며 건설 혁신은 발주자 혁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도 감리자에게 사고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 주체인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가 확실히 책임을 지는 선진 모델을 채택해야 한다. 현재의 건설산업 문제는 민간의 책임도 있지만 그동안 엉터리 제도와 대책을 양산한 정부와 공공의 책임이 훨씬 크다. 영국은 30년 전부터 건설산업 혁신을 “부실은 공공발주자의 거울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공공발주자 혁신에 초점을 맞췄음을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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