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만 8곡…접하기 힘든 곡들 향연…올해 행복했던 무대, 내년 더 풍성하길
다사다난했던 2023년. 부산에서도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졌다. 부산의 공연예술 애호가들은 올 한 해를 어떤 공연으로 기억할까. 국제신문은 부산문화회관 정기회원 6명에게 올해 본 공연 가운데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과 내년 지역 공연계에 대한 바람을 들었다.
# 연주자들 산타 모자 쓰고 캐럴, 크리스마스 선물 받은 듯 해요
▷조남선(46)
지난 12일 펼쳐진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송년음악회’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국악 공연이지만, 인디 밴드 ‘동양고주파’와 협연해 풍성한 공연을 만났다. 동양고주파와 국악관현악단이 곡을 메기고 받듯이 번갈아 연주했다. 열정이 느껴졌다. 게다가 프로그램 노트에 있는 곡들이 끝난 뒤 타악 파트 연주자가 산타 모자를 쓰고 일어나 다 함께 캐럴 메들리를 연주했다. 지휘자는 발광다이오드(LED) 반짝이 산타 모자를 쓰고 탬버린으로 온몸을 두드렸다. 예상치 못한 전개라 선물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연주자와 청중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려고 한 자리에 모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년엔 소리꾼 이자람 공연을 부산에서 봤으면 좋겠다. 판소리 공연은 많아도 작창(作唱)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새로운 판소리를 부산에서도 느껴보고 싶다.
# 유자 왕 피아노 리사이틀 감동, 타 지역과의 교류 활발했으면
▷김은경(63)
지난 10월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국립극단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기억에 선명히 남는다. 국립극단의 설문에서 가장 보고 싶은 연극 1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기대한 만큼 만족스러웠다. 지난 11월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유자 왕 피아노 리사이틀도 기억에 남는다. 많은 공연에서 한 곡의 앙코르곡만으로 끝나는 무대를 볼 때마다 좀 아쉬운 감정이 들곤 했다. 유자 왕 공연은 앙코르만 8곡에 달했다. 기쁨과 감동, 감사의 무대였다. 연주자의 관객에 대한 매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올해는 부산 공연계가 다른 지역과 교류가 적어 아쉬웠다. 다른 지역의 좋은 연극이나 전시회 등을 보고 싶다. 올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20주년을 맞았다. 내년엔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작품을 부산에서 만나고 싶다.
# 최수열 부산시향 감독 고별무대, 부산 시민으로서 의미있던 시간
▷김희성(56)
올해 부산은 피아노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준 높은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방문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지난 10월 열린 ‘안드라스 쉬프 피아노 리사이틀’이다. 쉬프는 어떤 곡을 연주할지 사전에 공개하지 않는 ‘블라인드’ 공연을 진행한다. 올해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다양한 연주자의 해석으로 접해 왔는데, 이 곡이 공연에서 울려퍼졌다. 좋아하는 연주자의 공연에서 좋아하는 곡을 들을 수 있었던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최수열 부산시향 예술감독의 고별 무대도 부산에 의미 있는 무대였다.
올해는 기념 해가 되는 작곡가의 작품을 탐구하는 시리즈가 부족해 아쉬움이 남는다. 내년엔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 푸치니 서거 100주기이다. 내년엔 시립예술단의 협력으로 푸치니 오페라를 만나고 싶다.
# 올리비에 샤를리에 멋진 협연, 잔디광장 클래식 공연 어떨까
▷권운경(55)
지난 9월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02회 부산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가 기억에 남는다. 무대는 ‘네 개의 프랑스 관현악’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돼 19, 20세기 프랑스 대표 작곡가의 작품을 들을 수 있었다. 쉽게 듣기 어려운 곡들이라 의미 있었다. 특히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는 올리비에 샤를리에와 협연해 더 인상 깊었다. 최수열 부산시향 예술감독, 부산시향 단원과 교감한 연주가 짙은 여운으로 남았다.
내년엔 부산에 프롬나드 공연이 많아졌으면 한다. 프롬나드는 산책하듯 자유롭게 잔디광장에서 클래식 공연을 즐기는 형식이다. 부산은 상대적으로 횟수나 규모 모두 부족하다. 외국의 공연처럼 규모가 큰 프롬나드 공연이 늘면 좋겠다. 해마다 열린다면 관광객 유치 등에도 효과적일 것이다.
# 시향 600회 정기연주회에 찬사, 지휘자·관객 하나된 ‘1분 침묵’
▷김유리(39)
지난 6월 부산문화회관에서 공연한 부산시향의 제600회 정기 연주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을 인터미션 없이 연주했다. 쉽게 연주되지 않는 곡을 직관할 수 있어 좋았다. 무대를 꽉 채우는 대규모 편성으로 풍부한 사운드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 최수열 지휘자가 손을 내리기 전까지 침묵이 1분가량 이어지는데 모든 관객이 하나가 돼 침묵을 유지했다. 박수를 치거나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관객과 지휘자 연주자의 마음이 하나가 된 듯했다. 최고의 공연이었다.
내년엔 유명한 연주자의 공연이 부산에 더 유치됐으면 좋겠다. 서울에 집중된 공연이 다양한 지역으로 확산되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에 자리한 공연장의 접근성이 개선된다면 지역 문화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 대형 오페라 접하기 힘든 부산, 내년엔 K-오페라 작품 만나길
▷박라미(39)
지난 8월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오페라 ‘토스카’가 기억에 깊이 남는다. 북미권에서 많이 공연되는 작품으로 순위권에 든다. 기대감이 높았다. 기대만큼 완성도 높은 공연이었다. 1막에는 성 안드레아 성당, 2막에는 파르네제 궁, 3막에는 성 안젤로 성채 등 로마 명소를 배경으로 해 흥미가 높았다. 부산에서 발레나 뮤지컬 등을 접할 기회는 많다. 하지만 오페라는 접하기가 쉽지 않다. 오페라하우스도 건립하고 있는 상황이라, 더 발전하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 작품을 꼽았다.
내년에는 관객을 위한 이벤트가 늘었으면 좋겠다. 내년엔 K-오페라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의 호수’ 등 발레 공연도 많았으면 좋겠다. 관객과 소통하는 이벤트가 늘어난다면 부산 공연계가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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