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日에 사과 요구도 않는 정부… ‘학살 100년’ 올해마저 못 하면 기회 사라진다
수많은 조선인이 무참히 희생된 관동대지진이 꼭 100년이 된 지난 9월 1일. 일본 도쿄에서 민단이 주최하는 ‘한국인 순난자(殉難者) 추념식’이 열렸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 등이 참석했지만 우리 정부가 참석에 공을 들였다던 스가 요시히데 일한의원연맹 회장,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 같은 일본 정계의 실력자들은 없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조화(弔花)도 없었다.
조선인 학살 문제는 지난 100년 동안 여러 증거와 연구 자료를 통해 수도 없이 확인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올해도 과거 문서를 근거로 한 야당·언론의 질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확정적인 것을 말하기 곤란하다”며 피해 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관방 장관은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더 어이없는 건 피해 당사자인 우리 정부가 일본에 적극적인 자세로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외교부 대변인이 100주년 하루 전인 8월 31일 “일본에 진상 조사 필요성을 제기하고 진상 규명을 위한 자료 제공을 요청한 바 있다”며 “앞으로도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 게 전부였다. 상해 임시정부는 관동대지진 직후 조사 요원을 일본에 파견했고 1923년 8월 조선인 학살에 관한 진상 보고서와 함께 일본 정부에 보내는 항의문을 발표했다. 이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일본의 일부 세력은 학살 자체를 부인하는 역사 왜곡까지 나아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2023년 올해의 국가들’이란 기사에서 한일 양국을 꼽으며 “협력을 위해 역사에 대한 고충을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고 관계 개선을 평가했다. 과거보다 미래를 보자는 우리 외교의 방향성에 공감하고, “우리가 먼저 물컵의 반을 채웠으니 일본이 나머지 반을 채워달라”는 정부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미래로 가려면 과거의 문제도 한 단락을 접어야 한다.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할 말은 해야 하는 사안에도 침묵한다면 물컵의 나머지 반은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외교부는 이런 일을 하라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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