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세종의 ‘부캐’는 음악가
‘부캐’, 이른바 부차적 캐릭터로 자신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시대다. 온라인 게임에서 설정한 보조적 캐릭터에서 연원한 부캐는 이미 우리 사회에 보편화됐다. 그런데 이런 부캐 문화를 거슬러 올라가면 흥미로운 지점에 닿게 된다. 바로 동아시아의 리더, 즉 제왕·정치가 등은 모두 부캐가 있었다는 것이다.
옛 동양의 제왕과 정치가의 부캐는 문학가였다. 문학 학습은 과거시험의 가장 기초적인 준비에 해당했다. 문학이라는 인문적 소양은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과 화합을 그 미덕으로 하기에, 문학가 부캐가 없다면 리더 자격이 없는 셈이었다.
또한 전통 시기 동아시아 몇몇 리더의 부캐는 음악가이기도 했다. 조선 세종은 음악에 조예가 깊어 음악을 통한 정치 질서 정비를 시행했다. 당나라 현종은 아예 스스로 작곡과 악기 연주를 했다. 무력이나 강압보다는 예악(禮樂)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인문적 질서를 추구한 것이다.
리더들의 또 다른 부캐는 미식가이자 음식 평론가였다. 송나라의 정치가이자 문인인 소식(蘇軾)은 셰프이자 자신이 만든 요리를 보급하는 부캐에 진심을 다했다. 값싼 돼지고기를 자신이 개발한 레시피로 새롭게 만든 음식인 동파육은 정치가 소식의 부캐가 만든 멋진 결과물이다.
청나라 강희제는 미식을 통한 정치를 실천한 인물이다. 만주족인 강희제는 중원 한족과의 융합을 위해 자신의 회갑날 중국 전체 65세 이상 노인 1000여 명을 궁궐로 초대했다. 궁궐 연회석상에서 만주족과 한족의 대표적인 음식을 차려 냈다. 이것이 바로 만한전석(滿漢全席)이다. 손자인 건륭제 역시 이 부캐를 살렸다. 그는 중국 강남 지역 한족을 포용하려고 여러 차례에 걸쳐 장강 이남으로 민정 시찰을 떠났다. 가는 곳마다 지역 음식을 맛보고 품평하고 음식점의 이름을 명명했다. 건륭제의 미식가적인 부캐는 그가 한족의 문화를 인정한다는 의미였고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 시대 리더들은 어떤 부캐를 갖추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문학과 음악으로 조화를 꾀하고, 음식으로 서로 다른 사람을 포용해 내는 멋진 부캐의 리더가 기다려지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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