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100년’ 녹여낸 스토리? 기대했던 선물 세트는 없었다
내달 3일 개봉 앞둔 ‘위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100세 생일을 맞이한 할아버지가 디즈니의 주제곡과도 같은 OST ‘별에게 소원을(When you wish upon a star)’을 기타로 연주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마법 같던 노래가 어쩐지 구슬프게 들린다. 디즈니 창립 100주년 기념작인 애니메이션 ‘위시(1월 3일 개봉)’는 종합선물세트처럼 풍성하지만, 정작 기대했던 선물은 보이지 않고 헛헛하게 끝난다.
영화 속 마법의 왕국 ‘로사스’에선 18세가 되면 왕에게 소원을 바치고, 마법사인 왕이 한 달에 한 번씩 추첨으로 누군가의 소원을 이뤄준다. 왕의 견습생이 되고 싶어하던 주인공 아샤는 왕의 검은 속내를 알게 되고 모두의 소원을 지켜내기 위해 왕과 맞서 싸운다. 소원은 간절히 원했지만 가지지 못한 것, 자신의 결핍이자 곧 정체성이라는 통찰은 빛난다. 하지만 왕에게 소원을 바치고 나면 소원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자신의 소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소원이 이뤄지기만을 기다린다는 설정은 기발하기보단 억지로 끼워 맞춘 듯 부자연스럽다.
피노키오는 살아있는 소년이 되길 바랐고, 알라딘은 자스민과 결혼하기 위해 왕자가 되길 바랐다. 간절한 소원은 100년간 이어져 온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정수(精髓)이자 유산과도 같다. 반면 자신의 소원은 모두의 소원을 되찾아주는 것이라는 ‘위시’의 주인공 ‘아샤’는 지나치게 이타적이라 오히려 매력이 떨어진다. 왕인 매그니피코 역시 악당에 걸맞은 카리스마 없이 진부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단점은 기억에 남지 않는 음악이다. 북아프리카와 남유럽의 지역색이 묻어나는 음악은 다채롭긴 하나 ‘겨울왕국’의 ‘렛 잇 고(Let it go)’처럼 따라 부르고 싶어지진 않는다. “우리는 모두 별의 먼지로부터 왔다”는 과학 교과서 같은 노래도 공익 광고를 끼워 넣은 듯 어색하다.
‘100주년 기념작’이란 기대를 내려놓고 본다면 즐길 만한 요소가 없진 않다.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에 사용하던 수채화 스타일과 3D 애니메이션을 결합해 동화책이 살아 움직이는 듯 연출했다. 영화 곳곳에 숨겨 놓은 ‘백설공주’의 독사과나 ‘미녀와 야수’의 찻잔 등 디즈니 100년을 기념하는 ‘이스터 에그(제작자가 작품 속에 숨겨 놓은 메시지)’를 찾는 재미도 있다. ‘겨울왕국’의 크리스 벅 감독과 마이클 지아이모 프로덕션 디자이너 등 최정예 제작진이 참여해 완성도 높은 작화를 보여준다.
추수감사절 연휴에 먼저 개봉한 북미에선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나폴레옹’에 밀리며 연휴 기간 티켓 수입 3170만 달러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다. 일본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수입으로 만회 중이나 투입된 제작비 2억 달러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기록이다.
창립 100주년인 올해는 디즈니에 쓰라린 한 해였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 매니아’를 시작으로 ‘인어공주’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까지 저조한 성적이 이어졌다. 최근작인 ‘더 마블스’는 혹평 속에 글로벌 티켓 수입 2억 달러를 간신히 넘기며 마블 역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디즈니의 구원 투수로 복귀한 최고경영자(CEO) 밥 아이거는 최근 “창작자들이 자신의 최우선 목표가 무엇인지 잊어버렸다”며 실패를 인정했다. 그는 지나치게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디즈니의 최우선 과제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며 메시지를 우선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변화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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