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문건 나올 때마다 日정부 “사실 명확히 할 기록이 없다” 입장 고수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관련 보고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존재했지만 일본 정부는 “사실관계를 명확히 할 기록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2009년 일본 내각부 산하 중앙방재회의가 발간한 ‘관동대지진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살상 대상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으며, 조선인 희생자 수는 관동대지진 당시 사망자의 1∼수%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당시 관동대지진 사망·실종자가 10만5000명이기 때문에 최소 1000명 이상의 대규모 살상을 인정한 것이다. 보고서 집필에 참여한 스즈키 준 도쿄대 교수는 최근 일본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해당 보고서는 대지진 당시 정부 발표로부터 언급할 수 있는 ‘최저한’”이라며 “보고서는 조선인 살해 사건을 ‘살상’이라고 표현했지만, 무기를 갖춘 다수가 무장하지 않은 소수를 살해했기 때문에 ‘학살’이란 표현이 타당한 사례가 많았다”고 했다.
조선총독부도 1923년 12월 작성한 ‘관동 지방 지진의 조선인 현황’이란 제목의 문서에서 대지진 당시 대규모 조선인 피해가 있었다고 명시했다. ‘살해 조선인 수(數)’라는 문서의 세부 통계 항목에는 ‘도쿄는 약 300명, 가나가와현은 약 180명, 사이타마현 166명, 지바현 89명, 군마현 약 40명, 도치기현 30명 등 총 813명’이라고 적혔다. 가장 희생자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 가나가와현의 살해 조선인 수에 대해 총독부는 ‘1명’이라고 쓰고는 ‘추가 조사 중’이라고도 적었다. 이 문서는 일본 정부 공식 문서로 분류되는 ‘사이토 마코토 문서(사이토 마코토가 조선 총독을 지낸 1919~1927년, 1929~1931년 기록된 공식 문서)’의 일부다.
대지진 당시 가나가와현이 내무성에 보고한 ‘재해에 따른 조선인과 중국인에 관한 범죄 및 보호 상황 기타 조사의 건’이라는 문서도 지난 9월 새롭게 공개됐다. 야스코치 아사키치 당시 가나가와현 지사는 1923년 11월 21일 50쪽 분량의 이 문서를 작성, 소노다 다다히코 당시 내무성 경보국장에게 보고했다. 대지진 직후인 1923년 9월 2~4일 사흘간 가나가와현에서만 59건의 살해 사건이 발생, 145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했다는 내용이다. “34살 남성인 차태숙은 9월 4일 요코하마 근처에서 자경단에게 살해됐다” 식으로 당시 살해된 조선인 14명의 실명도 이 문서에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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