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전우들이 마련해 준 귀국 선물… 금지·사치품에서 국민 음료 된 ‘커피’

채민기 기자 2023. 12. 2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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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대사 보물] 독자 한정현씨의 보물
1968년 베트남에서 귀국하는 한정현씨에게 전우들이 마련해 준 2파운드(약 900g)짜리 커피. 미국 뉴욕 근교 플러싱(Flushing)에서 생산됐다. /한정현씨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 독자 한정현(86)씨가 귀국을 준비하던 1968년 1월, 베트콩이 음력설을 기해 구정 대공세를 개시했다. 가족들을 위해 마련했던 선물 꾸러미가 적의 공격으로 박살이 나 버렸다. 남은 것은 입던 옷가지뿐. 그래도 한씨는 전우들이 십시일반 마련해 준 선물을 들고 귀국할 수 있었다.

그 안에 은색 깡통에 든 가루 커피가 있었다. 원두를 볶고(roasted) 갈았다(ground)는 문구와 함께 중량, 제조사 등이 뚜껑에 인쇄돼 있다. 깡통은 이제 군데군데 녹이 슬었다. 한씨는 “전우들의 정성을 생각해서 귀국한 뒤에도 마시거나 버리지 않고 간직해 왔다”고 했다.

구한말에 전래돼 ‘양탕국’, ‘가배차’ 같은 이름으로 불렸던 커피는 1960년대까지도 귀한 외제 기호품이었다. 1961년 4월 “국내 산업을 저해하거나 사치성이 있는” 상품의 판매를 금지한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 적용 대상이었다. 그래도 몰래 커피를 파는 다방을 경찰이 단속했다. 국내에서 원료 작물을 재배하지 못하는 커피는 전량이 “밀수품 또는 미군 부대에서 부정 입수한 물품”으로 간주돼 호텔에서 외국인에게 판매하는 것도 금지했다. 1960년대엔 치커리가 커피 대용 작물로 소개됐다.

커피가 점차 대중화된 것은 동서식품이 1970년 국내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였다. 1977년 롯데산업이 일본에서 커피 자판기를 도입했고 88 서울올림픽 이후엔 커피 전문점이 늘었다. 1999년 스타벅스 한국 1호점이 개점하면서 ‘아메리카노’와 ‘테이크아웃’의 시대가 열렸다. 2014년 서울은 세계에서 스타벅스 매장이 가장 많은 도시로 조사됐다. 지난해에도 한국의 스타벅스 매장 수가 1750개로 미국·중국·캐나다에 이어 세계 4위라는 조사가 나왔다.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2020년 기준)이 367잔으로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전국 커피·음료점은 4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어 9만9000개에 달했다. 커피 수입액도 11억9035만달러로 처음으로 10억달러를 돌파해 ‘국민 음료’의 인기를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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