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살인 부르는 ‘간병 지옥’

이연섭 논설위원 2023. 12. 2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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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서울에서 60대 남성이 3년 넘게 간병해온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희귀병을 앓는 아내를 돌보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둔 상태였다. 범행 직후 경찰에 자수한 그는 “불치병에 걸린 집사람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고, 오랜 간병으로 경제적으로 힘들고 막막했다”고 토로했다.

지난 4월에도 폐암과 파킨슨병 등을 앓던 아내를 5년간 돌보던 60대 남성이 아내를 숨지게 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2021년에는 대구에서 22세 아들이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돌보다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오랜 간병은 가족 누군가에겐 지옥이나 다름없다. ‘간병 지옥’은 때로는 살인을 부르고, 가족을 파산에 이르게 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살인까지 부르는 이런 참극은 특정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 10명 중 3명이 노인인 일본에선 해마다 40~50건씩의 간병 살인이 발생하고 있다. 요즘엔 특별한 뉴스 취급도 못 받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2024년 노인 인구가 1천만명을 넘어선다. 2025년에는 노인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노인 돌봄과 간병은 심각한 사회 문제다. 집안에 간병이 필요한 노인이 생기면 ‘비극’이 시작된다. 누가 간병을 할지, 간병비 부담은 어떻게 해결할지 가족 간 갈등이 생기게 된다. 간병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간병비가 하루 12만~15만원 수준이다. 월 400만~500만원은 한 가족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정부가 간병비에 칼을 빼들었다.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불리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대폭 늘리고, 요양병원 간병비를 급여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간병 지옥, 간병 살인, 간병 퇴직, 간병 파산 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건보재정 걱정이 있긴 하지만 실행 전략을 잘 짜서 ‘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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