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미래 사피엔스] [45] 머신 언러닝(machine unlearning)
영국 Channel4 공영방송국에서 2011년 첫 소개된 ‘블랙미러(Black Mirror)’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 사회를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으로 잘 보여준다. 유명한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당신의 모든 역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증강 현실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미래 사회에서는 일상생활 모든 장면을 스마트 콘택트렌즈로 녹화하고 기록할 수 있다.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고, 아름다운 과거 기억을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다. 얼마나 편하고 멋진 세상일까! 그런데 바로 문제도 생긴다. 아내의 불륜 기록을 확인한 주인공은 저장된 장면을 끝없이 반복해 재생하기 시작하고, 아무리 잊고 싶어도 결국 잊지 못하는 괴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기억은 진화 과정이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결과물 중 하나다. 과거에 경험한 일을 통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도와주고, 앞으로 더 현명한 결정을 하게 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경험한 모든 것을 100% 기억한다고 상상해보자. 정말 끔찍한 일이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과거 실수에 따른 수치심과 자괴감을 생생하게 영원히 기억한다면 그 누구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회복 탄력성, 새로운 도전, 그리고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용과 용서 모두 망각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다.
최근 인공지능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계학습(머신 러닝)은 망각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이 남긴 모든 기록을 학습하기 시작한 생성형 AI. 모든 이의 경험과 글과 선택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인공지능이 사회에 보편화된다면 그 세상은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디스토피아일까? 우리가 만들어낸 데이터가 동의 없이도 기계 학습에 사용될 수 있다면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기억되고 그 어느 것도 잊히지 않을 수 있는 미래. 이제 ‘머신 러닝’을 넘어 잊어야 하는 것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머신 언러닝(machine unlearning·삭제 학습)’도 중요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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