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불에 7개월 딸 안고 뛰어내려… 아빠는 끝내 숨졌다
2세 딸 던지고 뛴 엄마는 치료중
불 신고하고 대피 알린 30대 남성… 자신은 못 피하고 심정지로 발견
성탄 새벽에 불… 부상자 30명 달해
● 딸 안고 뛰어내린 30대 가장 참변
도봉경찰서와 도봉소방서 등에 따르면 25일 오전 4시 57분경 도봉구 방학동의 한 아파트 3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119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 당국은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후 관할 소방서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소방차 등 장비 60대와 소방관 등 312명을 동원했다. 이어 화재 발생 1시간 40여 분 만인 오전 6시 36분경 큰불을 잡고, 오전 8시 40분경 완전히 불을 껐다.
하지만 새벽 시간 순식간에 불이 위층으로 번진 탓에 대피하는 과정에서 숨지거나 부상을 당한 이가 적지 않았다.
바로 위층인 4층 주민 박모 씨(33)는 부인 정모 씨(34)와 함께 두 딸을 살리려다 세상을 떠났다.
박 씨와 정 씨는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다 경비원을 발견하고 ‘아이를 받아달라’고 소리쳤다. 경비원이 재활용 종이 포대를 바닥에 깔자 정 씨가 먼저 첫째 딸(2)을 던지고 뒤이어 자신도 뛰어내렸다고 한다. 정 씨는 어깨 등에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중이다.
박 씨는 7개월 된 둘째 딸을 던질 수 없어 안고 뛰어내렸는데 옆으로 떨어지며 머리를 바닥에 부딪친 것으로 알려졌다. 두개골 골절상 등을 입고 심정지 상태로 구급대원에게 발견된 박 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두 딸은 연기 흡입 및 저체온증 증상으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박 씨 가족은 두 달 전 불이 난 아파트로 이사 온 것으로 알려졌다.
119에 화재를 처음 신고한 사람은 아파트 10층에 거주하는 임모 씨(38)였다. 임 씨는 11층 비상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소방당국은 임 씨가 같이 살던 가족들을 먼저 피신시킨 후 불길을 피해 위로 이동하다 연기를 흡입해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 씨 유족은 “화재를 알리느라 정작 본인은 대피하지 못했다고 들었다”며 침통해했다.
불이 난 3층 집에 거주하던 70대 부부는 불길을 피해 밖으로 뛰어내려 구조됐다. 남편 김 씨는 병원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작은방에서 처음 불이 나기 시작했고 연기가 급속히 차올랐다”며 “정신 없이 아내와 거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26일 현장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힐 에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방화 등 범죄 혐의점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 “대피방송 제대로 안 이뤄져”
이 아파트 5층에 사는 송모 씨(54)는 “불이 나는 걸 보고 밖으로 대피하려다 연기 때문에 앞이 안 보여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며 “소방대원이 ‘베란다에 있는 게 더 안전하다’고 소리쳐 남편, 딸과 베란다에서 버텼다”고 말했다. 또 “건너편 동 주민들이 ‘불이 잡히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말해줬고 위아래층 주민과 베란다에서 소통하며 상황을 파악했다”고 덧붙였다.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 3층 다른 라인에 거주하는 김선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오전 5시경 불길이 위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었다”며 “연기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어 갇혀 있다가 구조됐다”고 했다.
피해 주민들은 도봉구청 등이 마련한 이재민 임시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성탄절 연휴에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며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슬픔에 잠겨 있을 가족 여러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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