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2023. 12. 2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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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가 귀양살이 한 양강도… 그곳에서 백석은 양치기로 살아
소련 여성 시인도 윤선도 ‘어부사시사’ 번역하며 체제 칼날 피해
고독했기에 강인했던… 흑백 선택의 시대에 ‘제3의 길’ 간 예술가들
일러스트=이철원

최인훈의 1960년 문제작 ‘광장’은 갈림길에 선 인간 이야기다. 좌냐 우냐, 남이냐 북이냐, 이념이냐 사랑이냐, 광장이냐 밀실이냐 사이에서 갈등하던 지식인 청년은 종착지로 ‘중립국’을 택한다. ‘푸른 광장’(바다) 즉 자살로 수렴되는 그의 최종 선택이다. 소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 흑백으로 양분된 사회, 그래서 선택이 강요된 시대는 불행하다. 그 시대를 사는 지식인·예술가의 삶이 특히 험난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숙명이 원래 제3 지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떼 지어 가는 길이 아닌 길, 강제받지 않은 사유와 표현이 그들 하는 일의 본령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밀실도 아니고 광장도 아닌 제3의 길은 여러 가지다. 극단적으로는 죽음이나 망명이 있고, 그 안에서 또 자살, 처형, 자발적 망명, 추방, 유배 등으로 갈라진다. 혁명기 러시아 지식인 다수가 그 길을 갔다. 죽지도 떠나지도 않은 채, 제자리에 남아 걷는 제3의 길도 있다. 그때는 아예 은거해 침묵하거나, 서랍과 창고 안 깊숙이 감춰둘 비밀작업을 몰래 이어가거나(매우 위험한 일이다), 체제의 칼날이 닿지 않을 무풍지대로 몸을 숨겨야 한다. 문학은 대표적 무풍지대가 고전문학, 아동문학, 번역문학이다. 동시대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이념을 드러낼 필요도 없으며, 검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실은 자신이 말하는 것이면서도 남이 말하는 것처럼 들리게 하는 이런 복화술의 문학 분야가 소비에트 시대에 유독 번성했다.

만주 방랑 후 고향인 북으로 가 정착한 시인 백석이 소비에트·러시아 문학 번역과 아동문학에 전념한 것도 같은 맥락 아닐까 싶다. 그것이 체제 순응적 역할 속에서 그나마 서정의 순수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백석은 아동문학 분과에서마저 밀려나 후반부 37년을 오지 양강도의 양치기로 살아야 했다. 양강도 양치기 백석의 70대 중반 사진이 남아 있다. 여전히 맑은 얼굴, 과히 찌들지 않은 얼굴이라고들 위안하지만, 내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는다. 근사했던 20, 30대 모던 보이 백석과 인민복 입은 저 깡마른 시골 노인 사이를 나는 영 무마하지 못하겠다.

양강도 삼수군은 말년의 고산 윤선도가 당파 싸움에 휘말려 귀양살이한 고장이기도 하다. 고산의 80 평생은 상소와 귀양으로 점철된 거친 생애였는데, 덕분에 뛰어난 시편들이 탄생했다. 은거지 해남에서 쓴 ‘오우가’, 보길도에서 쓴 ‘어부사시사’는 모두 외로운 ‘내적 망명’(internal exile)의 절창이다. 그런데 윤선도의 은거 시를 안나 아흐마토바(A. Akhmatova)라는 소비에트 여류 시인이 번역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흐마토바는 혁명과 전쟁과 숙청의 현장에 끝까지 남아 모든 비극을 겪고 목격하고 기록한 기념비적 시인이다. 반혁명주의자였던 첫 남편은 총살당하고, 또 다른 남편은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죽고, 아들은 두 차례나 유형 당하고, 친구들도 눈앞에서 사라지고, 자신은 작가 동맹에서 제명돼 오랜 기간 시를 발표할 수 없었다. 한때 모딜리아니를 비롯해 여러 남성 예술가가 사랑에 빠져 스케치하고 형상화한 그 신비로운 아름다움은 그녀의 40대 얼굴에선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글을 발표하지 못해 생계가 막막했을 때, 그녀는 대신 번역을 했다. 시조집 ‘푸른 산의 나라에서 온 시들지 않는 말들’(’청구영언’을 뜻하리라)은 레닌그라드 대학 조선어 문학 전공자들의 초벌 번역을 바탕으로 작업해 1956년에 나왔다. 고려 가요 ‘동동’에서 황진이 시조까지 2백수 넘게 수록된 이 번역 시집에 대해 두 가지만 밝힌다. 우선 시인의 솜씨다운 유려한 번역이고, 원시를 읽을 때보다 오히려 더 잘 이해되는 감이 있다. 비슷한 기간에 쓴 ‘조선 시조를 모방하여’라는 창작시와 일련의 4행시는 본격적인 비교 연구 대상이다. 또 한 가지, 번역에 관한 짧은 글에서 그녀는 조선 시조가 매우 회화적이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뜻밖에도 주제나 분위기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어부사시사’와 ‘노인과 바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일맥상통하는 면도 없지 않다. 윤선도가 귀양 간 곳에서 백석이 양치기 귀양 생활을 하고, 윤선도가 은거하며 쓴 시를 역시 은거 중의 아흐마토바가 번역했다. 모두 ‘제3의 길’을 간 망명객이다. 헤밍웨이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홀로 바다에 나가 일생일대 사투를 벌이며 다짐한다.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그토록 고독했지만 강인했던, 또는 그토록 고독했기에 강인했던 정신의 승리 안에서, 그들은 결국 한 핏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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