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40년 만에 다시 읽는 '역사란 무엇인가'

김준동 법무법인 세종고문· 前대한상의 부회장 2023. 12. 2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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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대가 그러하듯이 1980년대 386 젊은이들은 모두가 고민들을 안고 살았다.

이 시기에 에드워드 카(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명제는 신선한 아이콘이었다.

1·2차 대전을 모두 겪었고 냉전기에 소련을 포함, 오랜 외교관 생활을 토대로 1961년 케임브리지대학의 역사 강의를 정리해서 '역사란 무엇인가'(이하 책)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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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동 고문(법무법인 세종)

모든 세대가 그러하듯이 1980년대 386 젊은이들은 모두가 고민들을 안고 살았다. 어디를 가나 민주화 이야기였고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이나 취준생이나 다같이 고민하던 시대였다. 이 시기에 에드워드 카(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명제는 신선한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유튜버들도 인정하듯이 그 책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가장 많이 회자된 책이기도 했다.

카는 189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소련의 해체를 보지 못하고 1982년에 죽었다. 1·2차 대전을 모두 겪었고 냉전기에 소련을 포함, 오랜 외교관 생활을 토대로 1961년 케임브리지대학의 역사 강의를 정리해서 '역사란 무엇인가'(이하 책)를 출간했다. 2차 대전 후 계획경제를 통해 처참한 경제를 살리고 과학에서 미국을 앞지를 정도로 발전시킨 소련의 정치체제를 눈여겨본 사람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영화 '변호인'에서는 주인공이 카의 책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좌익으로 몰리고 5공화국에서는 금서로 지정됐다. 2차 대전 후 미소 냉전기가 시작되고 영국의 존재감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미래에 대한 국민들의 자신감이 없어져 갈 때 조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을 찾으려고 애쓴 애국자였다. 이 부분은 책의 후반부 '진보로서의 역사' '넓어지는 지평선'에 잘 나와 있다.

카의 메시지를 나름 정리해 보면 첫째, 역사가의 선택과 지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역사란 역사가가 당대 문제를 선택하고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서 그 원인을 찾는 과정이라고 했다. 따라서 승자중심인 기존의 역사적 사실에 회의적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 머릿속에 포맷된 '역사는 현재(문제)와 과거(역사적 사실)간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나온다. 둘째, 인과관계를 찾는 과정에서 우연적인 요소보다는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중요하며 이를 찾는 것이 역사가의 의무라고 했다. 여기에서 특정 인물들의 공과는 우연적인 요인으로 간주된다. 셋째, 인간들의 축적된 지성의 확장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미래는 '어쨌든'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카는 역사가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고 찰나에 불과한 현재라는 것은 사실 없으며 역사는 '미래와 과거의 대화'라고 다시 정의한다. 카는 미래는 영어권을 넘어 전세계로 문명의 지평이 넓어질 것으로 봤다. 미래에 대한 밝은 믿음이다.

한때 민주화 투쟁의 교본이었다가 이제는 586으로 변한 우리 세대의 기억에 남아있는 카의 메시지를 천착해본다. 먼저 그 당시 소위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의 자양분이었던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명제는 이제 카 자신이 강조한 '미래와 과거의 대화'라는 미래지향적인 명제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꿈을 제시하고 이를 역사에서 원동력을 찾는 모습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이 책이 쓰인 1961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60년이나 지났다. 시대적인 상황도 많이 변했다. 다음으로 역사가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필연적인 인과관계만 따진다면 위대한 시민은 무시될 수 있다. 특히 역사가들이 집단적으로 특정 지향성을 가진다면 어떻게 될까. 개인들의 역사관이 중요하다. 카도 미래와 과거의 대화라는 명제는 개인의 인생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각자가 역사의 주인이다. 마지막으로 카는 인간의 '지성'을 강조했다. 지성은 역사를 통한 획득형질로서 인간의 역사발전에 원동력이라고 봤다. 진영과 팬덤의 극한적인 대결, 줄어가는 중산층, 젊은이들의 불안. 60년 전 대영제국의 미래를 위해 걱정하면서 지성에 희망을 걸었던 카의 모습이 현재 대한민국에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김준동 법무법인 세종고문· 前대한상의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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