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18] 죽음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어머니는 내가 스물일곱 살이던 해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세상을 등지던 어머니의 그 나이가 되어 지난 1년을 살았다. 이른 나이에 가까운 이와 사별(死別)한 사람들은 독특한 경험을 하곤 한다. 예를 들어, 열다섯 살에 마흔 살의 아버지를 여읜 사람은, 마흔한 살이 되고 나서부터는 꿈속에서 자신보다 하루라도 더 젊은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가 여든 살이 되면 그는 꿈속에서 자기보다 인생을 절반밖에는 살지 못한 한 사내를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이런 꿈에서 깨고 나면, 그 기분은 헤아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 상념에 사로잡혀서인지, 올 한 해 부모님을 꿈속에서 자주 뵈었다. 나보다 젊은 어머니를 꿈속에서 만나지 않을 수 있는 마지막 해였고, 노인이 되어 작고하신 아버지와는 ‘그러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싶다는 무의식 때문이었을 게다.
해 질 녘 페르시아의 한 철학자가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갑자기 비명이 들리고, 하인이 달려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방금 ‘죽음의 신’을 보았다며 벌벌 떨었다. 하인은 철학자에게 말[馬]을 빌려달라고 애원했다. 테헤란으로 도망치겠다는 거였다. 철학자는 승낙했고, 말에 올라탄 하인은 내려앉는 어둠 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산책을 중단한 철학자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 죽음의 신이 서 있었다. 철학자가 물었다. “왜 내 하인에게 공포를 주었나?” 죽음의 신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오늘 밤 그를 테헤란에서 만나 저승으로 데려갈 계획인데, 그가 아직도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놀랐을 뿐이다.”
나는 현실에서도 저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십 수년 전 아는 형님이 서울의 ‘대단한’ 직장에서 지방의 직장으로 스카우트되는 것에 대해 갈등하고 있었다. 그 지방의 직장도 조건이 ‘나쁘진 않았다’. 나는 서울에 있기를 권했다. 내 말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는 서울에 남았다. 몇 년 뒤 그는 서울의 직장에서 국제 뉴스에 나올 만큼 ‘끔찍한’ 사고를 당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그가 지방으로 갔다면, 그는 서울에서 겪었을 불행은 ‘상상조차 못 한 채’ 서울에서 누릴 승승장구를 그리워하고 있었겠구나.
이렇듯 인간은 무엇이 좋은 일이고 무엇이 나쁜 일인지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운명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운명’ 자체는 분명히 있다.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반드시 죽으니까. 죽음은 나와 타인의 ‘영원한 이별’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자신과의 영원한 이별’에 대해서는 늘 망각한다. 죽음은 죽은 자의 묘비가 아니라 제대로 살기 위한 산 자의 경전(經典)이다. 언젠가 나는 백발 노인이 되어 꿈속에서 쉰세 살의 한 여인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며 내 지난 삶을 고백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고난 속에서도 인생을 열심히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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