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규섭]‘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집착
여론 냉담하고 일부에선 총장 사퇴 요구키도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 과연 올바른 것인가
구체적으로는 주로 이슬람계 학생들이 주도한 캠퍼스 반유대교 시위의 학칙 위반 여부가 핵심 질문이었다. 역사적으로는 어려운 질문이지만 1400명 이상의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한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촉발됐고 수십 명의 미국 시민들이 살해되거나 인질로 잡힌 특수 상황임을 고려하면 그리 어렵지만도 않은 질문이다.
그러나 세 총장은 심지어 “‘유대인 말살(genocide)’을 주장하는 시위가 해당 대학의 학칙 위반이냐”는 한 의원의 ‘쉬운’ 질문에도 답을 피했다. 특히 생물학자인 MIT 총장보다는 정치학과 법학 전공 교수인 하버드대와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에게 질문이 집중됐는데 두 사람은 “우리 대학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거나 “맥락에 따라 다르다”는 원론적 동문서답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법률가인 펜실베이니아대 리즈 매길 총장은 “스피치가 행위(conduct)가 되면 괴롭힘(harassment)이 될 수도 있다”는 학폭 가해자 변호사나 할 법한 논리를 폈고 흑인인 클라우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은 “똑같은 주장을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해 해도 학칙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한 의원의 단도직입적 질문에 한동안 답을 못 했다.
두 총장은 왜 “학칙 위반이다”라는 한마디를 못 할까.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은 아니었을까. 미국 사회의 병적 ‘정치적 올바름’의 기저에는 미국인들의 도덕적, 이념적 우월감의 아킬레스건인 노예제도라는 ‘과거사’에 기인한 흑인 등 ‘약자’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약자’인 이슬람계 학생들이 과격한 주장을 하더라도 대놓고 비판하기를 어려워한다. 많은 도시에서 폭력적 시위로 변질되었던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를 비판하는 미국 내 주류 언론이 거의 없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역설적이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후보 1위를 달리는 현실도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22년 미 대법원은 유대계·아시아계가 하버드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유대계·아시아계 지원자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흑인 지원자 등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인종 기반의 입시 소수자 보호 정책(Affirmative Action)을 헌법정신에 반하는 것으로 판결했다. 이듬해 하버드대 이사회는 대법원에 시위라도 하듯 흑인 여성 정치학자인 게이 교수를 총장으로 선출했다(사실 게이 총장은 흑인이지만 부친이 미 육군 엔지니어였고 본인은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보딩스쿨인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 출신으로서 ‘흙수저’가 전혀 아니다).
과연 올바른 대학의 방향일까. 1990년대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지 대학 랭킹에서 1위를 8번 차지했던 하버드대는 2000년대와 2010년대에는 4번으로 줄었고 그나마 2015년 이후 2024년까지는 단 한 번도 1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아시아계 학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버클리대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등 UC 계열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들은 2024년 일부 아이비리그 대학보다도 높은 순위에 올라 약진 중이다. 이사회가 게이 총장의 재신임을 결의한 하버드대와는 달리 청문회 직후 매길 총장이 사임한 펜실베이니아대는 1990년대 평균 12.5위에서 2024년 6위로 상승했고 총장 선출과 학생 선발의 ‘정치적 올바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MIT는 1990년대 평균 5.2위에서 2024년에는 하버드대를 제치고 프린스턴대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여론도 두 총장의 답변에 냉담했다. 청문회 직후인 12월 8∼10일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지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대학들이 반유대교 시위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답했고 60%는 “대학 총장들이 직위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다.
2010년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46명이 희생된 천안함이 최신 호위함으로 부활했다고 한다. 당시 천안함 피격을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전사자 유가족의 가슴을 후벼 파는 온갖 음모론을 제기했던 인사들이 있었다. 운동권에 대한 부채 의식에 기인한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의 유효 기간은 언제까지일까.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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