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졸업식·무착륙 비행·GPU 푸어…무슨 말인지 아세요?

윤원섭 특파원(yws@mk.co.kr), 이덕주 특파원(mrdjlee@mk.co.kr), 손일선 특파원(isson@mk.co.kr), 이승훈 특파원(thoth@mk.co.kr) 2023. 12. 2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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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특파원들이 뽑은 ‘올해의 단어’매년 12월이면 세계 유수의 기관들이 ‘올해의 단어’를 발표한다. 2023년을 대표하는 단어로 ‘환각을 느끼다(hallucinate)’ ‘리즈(rizz·이성을 끌어당기는 매력)’ 등이 꼽힌 가운데, 매일경제 특파원들이 취재현장에서 포착한 트렌드를 올해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사진=연합뉴스]
◆ 경착륙? 연착륙? 미국 경제는 1년 내내 고공비행
올해 미국 경제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무착륙비행(FWL: Flight Without Landing)’이다. 1년 전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이 올해 미국의 경기침체를 전망했지만, 미국 경제가 오히려 예상보다 높은 성장세를 보인 데 착안한 단어다. 침체가 내년으로 연기되었다는 주장도 일부 있지만 올해 미국 경제가 견조했던 것은 분명했다.

골드만삭스가 이름뿐인 경기침체를 뜻하는 ‘리노(RINO: Recession In Name Only)’를 만들어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증시가 올해 예상외 강세를 보이자 리노 랠리로 불렀다. S&P500지수는 지난 22일 연초 대비 23% 오르며 역대 최고점에 근접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연율 기준 2.2%(1분기), 2.1%(2분기), 4.9%(3분기) 등으로 선방했다. 팬데믹 직전해인 2019년 성장률 2.2%(1분기), 3.4%(2분기), 4.6%(3분기) 등과 비슷하다.

올해 미국 경제를 떠받친 것은 무엇보다 강력한 개인 소비였다. 고금리와 고물가가 지속되었지만 상품과 서비스 모두 소비가 늘어났다. 개인소비 증가율은 전분기 대비 연율 기준 3.8%(1분기), 0.8%(2분기), 3.6%(3분기) 등으로 같은 기간 산업생산 증가율(-0.3%), 0.8%, 2.0%)를 크게 넘어섰다.

소비와 함께 뜨거운 고용시장도 경제를 끌어올렸다. 올해 실업률은 3%대 중후반을 기록해 완전고용에 가까웠다. 시간당임금상승률은 4%대를 유지하며 팬데믹 이전(2~3%)보다 여전히 높았다.

엔비디아 로고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나만 없어, GPU” “나도 만들고 말 거야, GPU”
실리콘밸리에서 올해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는 무엇일까? ‘인공지능(AI)’이나 ‘챗GPT’ 처럼 이제는 일상화된 단어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에서만 주목받았던 단어는 ‘GPU 푸어’다. 반도체 분석 기관 세미애널리시스가 언급하면서 널리 퍼진 이 단어는 2023년 AI 열풍의 단면을 보여준다.

GPU는 반도체기업 엔비디아에서 만드는 병렬연산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말한다. 컴퓨터에서 고해상도의 그래픽 처리, 비트코인 채굴 등에도 쓰이지만 최근에는 AI 학습과 추론(학습한 AI 를 서비스에 사용하는 것)에 많이 사용된다.

지난해 11월 세상에 등장한 챗GPT 가 큰 화제를 모으면서 AI 를 학습시키고 이를 서비스하려는 수요가 폭발했다. 당연히 엔비디아가 만드는 GPU 에 주문이 몰려들었고, GPU를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은 자조적으로 자신들을 ‘GPU 푸어’라고 불렀다. GPU 를 충분히 확보한 기업들은 ‘GPU 리치’라고 불렸다.

GPU를 많이 확보한 회사들은 다른 회사들보다 빠르게 학습을 해서 좋은 AI 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가지고 좋은 인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직접 AI 반도체를 만들고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구글이나, 대규모 투자를 받은 오픈AI 같은 스타트업이 ‘GPU 리치’였다. 하지만 GPU 푸어 기업들은 AI 를 개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GPU 수요 폭증으로 엔비디아 주가는 올들어 242%나 뛰어올랐다. 엔비디아의 AI 용 GPU 실적이 반영되는 데이터센터 매출은 지난 3분기에 145억10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같은 기간대비 279%나 올랐다. GPU 부족으로 가격이 치솟으면서 벌어진 결과다. AMD 부터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까지 많은 기업들이 엔비디아 GPU 를 대체할 수 있는 AI 반도체를 내놓겠다고 올해 선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졸업식이 아니라 장례식” 中 ‘제로직장 시대’의 탄식
중국은 2023년 엄격한 제로코로나 정책을 폐지하고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나섰다. 하지만 경제회복 속도는 당초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데다 부동산 침체, 지방정부 부채위기 등이 겹치면서 중국 경제가 의미있는 반등을 이뤄내지 못한 것이다.

경제 부진의 직격탄을 맞은 건 중국 청년들이었다.

중국 대학 졸업시즌인 올해 6월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가장 뜨겁게 달군 것은 이른바 ‘시체 졸업사진(死亡毕业照)’이었다.

“살아있어도 산 게 아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학생들이 졸업 가운을 입은 채 얼굴을 땅에 늘어뜨리거나 난간·간판·의자 등에 시체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 등이 담긴 졸업사진이 유행처럼 번졌다. 졸업식이 곧 장례식이라는 졸업생들의 탄식이었다.

일명 시체샷, 좀비샷으로 불리는 사진들은 중국의 취업난을 대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CNN은 “재학 내내 제로코로나에 시달리던 대학생들이 이제는 ‘제로 직장’이라는 취업난을 겪으며 느끼는 비애를 사진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중국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1.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당국은 사회 불안 등을 우려해 7월 이후 청년실업률 발표를 전격 중단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에도 중국 청년들은 ‘탕핑’, ‘바이란’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자신들의 처지를 자조했다.

‘탕핑’은 똑바로 드러누워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버리면서 아예 더는 노력하지 않는 태도를 뜻하고 ‘바이란’은 완전히 자포자기한 상태를 의미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임시 국회가 끝난 지난 13일 도쿄 총리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사진 = EPA 연합뉴스]
◆들뜬 일본 사회에 찬물…기시다 발목잡은 후진 정치
올해 일본은 주요 7개국(G7) 의장국을 맡으며 대외적으로 국력을 과시했고, 2011년 대지진 이후 최대 문제였던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오염수를 방출하면서 묵혀 둔 현안을 처리한 해로도 기록된다. 일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선수인 오타니 쇼헤이의 대형 미국프로야구(MLB) 계약과 38년만의 한신 타이거스 우승 또한 열도 전반을 아우르는 이슈로 꼽힌다.

이러한 들뜬 사회 분위기는 연말에 등장한 ‘킷쿠밧쿠(キックバック)’ 단어가 모두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 역할을 했다. 영어로 정치적 뇌물을 뜻하는 ‘킷백(Kickback)’의 일본식 발음은 킷쿠밧쿠는 일본 후진 정치 체제와 함께 정부 지지율을 급락시키는 악재가 됐다.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여러 개의 파벌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최대 파벌로는 고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끌었던 아베파(세이와정책연구회)가 꼽히는데, 이들이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파티를 주최한 뒤 여기서 거둔 이익의 일부를 소속 의원들에게 돌려준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아베파가 소속 의원들에게 돌려준 돈은 회계처리가 안 되었고, 결국 의원들의 비자금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게 일본 국민의 시각이다.

가뜩이나 최근 2~3년 새 물가가 꾸준히 올라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각에 대한 국민 시선이 곱지 않은데, 이 사건이 큰 도화선이 되어 현재 내각 지지율은 역대 최저수준인 10%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정치 비자금 문제가 심각해지자 기시다 총리는 아베파 소속 장관급 인사 4명과 차관급 인사 5명을 전원 경질하고, 자민당 내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아베파 인사도 교체했지만 역부족이다.

여기에 도쿄지검 특수부가 조사를 시작하면서 킷쿠밧쿠 사건이 기시다 내각을 무너뜨리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벌써 후임자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기업들 임금 협상이 마무리되는 내년 3~4월경을 구체적으로 개각 시점으로 전망하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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