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의사람연구] 교사들의 역할

2023. 12. 25.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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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담벼락에 낙서한 10대들
문화재 훼손의 엄중함 몰랐다니…
도덕·규범에 대한 판단력 부재
학교가 무너진 현실 때문 아닐까

이번 글쓰기 후 당분간 칼럼을 쉬게 될 것 같다. 22대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하게 되었고 정파적인 인물은 신문 지면의 글쓰기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히 국민의 입장에서 중립적이고도 객관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을 리 없을 테지만 만에 하나 말썽이 될 만한 일은 피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이제 2023년이 일주일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허전하다. 나는 과연 한 해를 제대로 살아왔을까? 연말에 이르러 기존에 교재로 쓰던 책의 개정판과 신간을 하나 출간하게 되니 학자로서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2월 졸업 예정자들의 논문심사는 마쳤지만, 아직 재학 중인 지도학생들을 당분간 돌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어언 이십오년간 교단에 섰다.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순식간이었다. 한때는 학생들이 내 자식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고, 내 수하를 떠나 장성하는 제자들을 보면 자랑스럽고 든든했다. 사제지간의 연이란 부모자식 간과 비슷하여 그 끈끈함이 남다르다.

최근 학교현장의 모습들을 보면 아쉽기 그지없다. 과거처럼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신체적인 체벌을 행하던 관행은 사라졌지만 이제는 교실에서의 신뢰관계라는 것은 부재하다. 학생이 학생을 폭행하기도 하는가 하면 학생에게 폭행당하여 교단에 서지 못하는 선생님까지 등장하고 있다. 서로가 불신하고 의심하여 녹음·녹화는 일상이 되었으며 가끔 그렇게 몰래 습득한 녹취록 일부가 소송의 증거로 쓰이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학생들 간 학교폭력이나 교사폭력, 더욱이 학부형들에 의한 교사 소송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폭력과 분쟁의 장이 된 교실에서 교육은 무너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혼란 속에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사회적 규범의 내면화 기회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십대 초반부터 시작되는 사춘기는 인간의 발달단계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그 연유는 바로 중추신경계 발달의 마지막 단계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제력이나 도덕성의 완성도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어린 시절 충동적이고 부주의적인 인지특성은 사춘기를 거치며 현저히 성숙해져야 하는데, 그 중심에는 이심전심 공감능력의 발달도 포함되어 있다. 타인의 입장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은 바로 이 시기의 주요한 심리적 발달과제이기도 하다. 만일 이 시기에 제대로 된 교육이나 훈육이 부재할 경우에는 성인이 되어서도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생각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된다.

도덕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아마도 모델링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부모가 우선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고 정의로운 선생님이 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 이런 사회화의 모델을 찾기 어려운 청소년들도 있을 것이다. 집에서는 학대나 방임상태로, 학교에서는 또래들과의 차별을 경험한다면 이들은 상대적인 열등감과 박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고 대신 어떤 다른 방식을 찾아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자 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17세 소년과 16세 소녀가 경복궁 담벼락에 불법 영상물을 다운받을 수 있는 사이트의 주소를 낙서하였다고 한다. 문화재 훼손은 중대한 범죄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렇게밖에는 자신의 영웅심을 드러낼 수 없었던 그 소년의 행동방식은 정말로 딱하다. 배후에 오만 원을 주고 이 짓을 하라고 시킨 소위 ‘지인’이란 자가 있다고 하니 꼭 추적하여 검거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런 제안 자체의 부적절함을 제대로 인식하지조차 못한 그 소년의 판단력은 결코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서 드물게 발견해낼 일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남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쓸데없는 경쟁의식만 심어주며 키운 우리 윗세대들의 과실로 인해 결과적으로 산출된 부조리일 것이다.

공동체 의식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 예절이나 생활습관보다는 도형이나 미적분, 외국어 성적으로 우열을 가리는 분위기, 이 모든 것이 일찍이 사회화의 과정으로부터 도태되는 청소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더 어릴 때부터 이루어져야 하는 기본적인 생활습관조차 체득하지 못한 초등학생들도 이제는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부모는 교실에서의 문제행동을 용인하지 못하는 교사를, 또한 교사들은 생활습관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부모를 탓하며 소송전으로 소일하고 있다. 애초 변호사들을 학교현장의 해결사로 투입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소송은 해결은커녕 상처만 남기기 때문에.

한 사람이 성장하여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제대로 된 구성원이 되기까지에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본인과 부모는 물론 교사와 학교, 심지어는 동네 어르신과 그 동네 분위기까지 모두가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한 사람의 사회구성원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를 다시 살려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교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필자의 입장에서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만일 이것이 평균적이라면 바로 우리부터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선생님들을 봐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문화재를 훼손한 소년의 선생님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여 이 글을 남겨본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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