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실패한 룸펜들의 밤

2023. 12. 2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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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에 구겨져 있다.

시 속 한 사람은 지금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한 해의 끝, 쓸쓸한 사람은 더 쓸쓸해지는 시간.

어둠 속으로 아프게 침잠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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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다
방구석에 구겨져 있다. 약봉지처럼.
 
물약을 쏟고 누워 있다.
 
팔다리 달린 알약처럼.
숨을 쉬고
 
참다가.
 
창밖으로
눈발이 흩날리고 있습니다. 새의 활강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석유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 입김이 번지고.
온수에서 녹는
 
가루.
쏟아집니다. 창밖으로 눈보라.
(하략)
시 속 한 사람은 지금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면서 하염없이 앓고 있다. 혼자만의 방에 누워 구겨진 “약봉지처럼”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바깥에는 마침 눈이 온다.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그는 하필 “새의 활강”을 떠올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날기 위한 연습을 하는 걸지도. 끓는 주전자에서 피어나는 허연 기체로부터 “입김”을, 아주 어렴풋이나마 삶의 기운을 감지하듯이. 어쩌면……. 금방이라도 녹아 사라질 듯 위태로운 몸과 마음, 그럼에도 쏟아지는 눈을 가루약처럼 음미하며 찬찬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 해의 끝, 쓸쓸한 사람은 더 쓸쓸해지는 시간. 어둠 속으로 아프게 침잠하는 시간. 그러나 너무 오래 자책하지는 않기를. 가루약 같은 눈이 오는 밤이면, 근심을 멈추고 잠시 쉬기를.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살아지는 일을, 일어서는 일을 끝내 생각하기를.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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