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세계속으로] ‘미스 프랑스’ 쇼트커트와 韓 침소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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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미인대회에 별 관심이 없었으나 미스 프랑스와 관련된 한국 언론의 최근 보도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난 16일 미스 프랑스에 선발된 여성이 짧은 머리, 일명 쇼트커트로 논쟁의 중심에 섰다는 뉴스였다.
중도의 르 몽드나 좌파의 리베라시옹, 우파의 르 피가로 등 주요 언론에서 미스 프랑스 소식은 단신(短信)이었고 처음으로 단발 여성이 선출되었다는 사실을 간략하게 언급하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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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영미언론 베끼며 백인편견 그대로 답습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랑스 사회는 조용한 편이었다. 중도의 르 몽드나 좌파의 리베라시옹, 우파의 르 피가로 등 주요 언론에서 미스 프랑스 소식은 단신(短信)이었고 처음으로 단발 여성이 선출되었다는 사실을 간략하게 언급하는 정도였다. 보수적인 르 피가로의 여성 섹션 ‘마담 피가로’는 역사학자와 인터뷰를 통해 긴 머리와 풍만한 육체라는 전통적 미의 기준이 변화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프랑스의 보수언론도 수긍하는 미스 프랑스 선발을 문제 삼는 이는 누굴까 궁금했다. 놀랍게도 한국 언론이 공통으로 지목하는 뉴스의 출처는 달랑 영국의 더 타임스 기사 한 편이었다. 영국의 한 신문사 기자가 프랑스 사회가 논쟁으로 들끓는다고 보도하면 한국은 최소한의 확인도 없이 한목소리로 반복하는 셈이다. 영국은 선진국이니까, 더 타임스는 권위지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클릭 수를 늘릴 수 있는 선정적인 내용이니까.
프랑스는 서구 사회에서도 가장 일찍 여성들이 짧은 머리를 하고 거리를 활보한 나라다. 대략 1900년대부터 여성의 단발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소수의 현대적 여성이 당시의 잣대로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을 즐겼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부터는 활동적인 일반 여성들이 선호하는 유행 스타일로 부상했다. 당시 패션계의 코코 샤넬은 대표적인 단발 인물이다. 이후 쇼트커트는 일하는 여성의 자유와 독립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1990년대 프랑스 최초의 여성 총리 에디트 크레송이나 2023년 현재 총리 엘리자베트 보른도 쇼트커트이다. 현대 여성의 사회진출에 주눅 든 극소수 프랑스 ‘꼰대’들이 미인대회에서나 19세기적 여성상을 갈구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늘어놓는 불평을 프랑스 사회의 일반적인 잣대로 봐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한국은 영·미 언론 베껴 쓰기로 앵글로색슨 사회의 편견을 그대로 옮겨오기도 한다. 이번에 선발된 미스 프랑스가 인도양의 레위니옹 출신이라고 보도했으나 그는 실제 프랑스 본토 북부에서 태어나 자란 여성이며 레위니옹은 그 어머니의 출신지일 뿐, 아버지는 ‘본토의 백인’이다.
공식적으로 출신지나 혈통을 따지는 일을 금기시하는 프랑스 사회에서 언론은 일상적으로 이런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피부색이나 혈통에 집착하는 영·미 사회와 다른 점이다. 영·미의 안경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한국 언론은 미스 프랑스의 이름마저 ‘에브 질’에서 ‘이브 질’로 바꿔놓았다. 무엇보다 프랑스에 투영한 영국의 문화전쟁을 한국으로 통째 수입했다.
오래전 한국 언론은 출처도 밝히지 않고 외국 신문을 옮겨 쓰곤 했다. 요즘은 다행히 출처를 밝힌다. 덧붙여 보도하는 나라의 언론까지 읽고 확인해본다면 많은 오해나 과장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젠더 문제처럼 21세기의 예민한 주제를 다룰 때는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침소봉대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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