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청담동 빌라촌 ‘GTX 마찰’ 재연
2021년 GTX-A 지하 터널 공사
“땅 꺼지고 담 뒤틀려” 거센 항의
‘님비 아니냐’ 여론에 수면 아래로
내년 4월 개통을 앞둔 수도권광역철도(GTX)-A. 수도권 주민들에겐 출퇴근 지옥에서 해방시켜줄 ‘희망’이지만, 서울 강남구 청담동 빌라단지에 사는 주민들에겐 주거 안정을 흔드는 ‘악몽’이었다.
“하루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흔들렸어요. 집에 와보니 타일이 떨어져 있더라고요.” 입주민 A씨(78)의 말이다. A씨는 하루 종일 이어지는 공사 소음으로 급성 난청을 얻었다고 말했다.
6세 아들을 둔 B씨(46)는 설거지를 하다가 손에서 전류를 느꼈다고 했다. “혹시나 아들이 감전이라도 될까봐 너무 불안했던” B씨는 전기기사를 불렀지만 정확한 누전 위치는 잡아내지 못했다. 다만 GTX 공사로 집의 내·외벽에 생긴 균열을 타고 전류가 유입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전했다.
그런데 최근 주민들에게 GTX-A에 이어 GTX-C노선도 청담동 빌라촌을 지나도록 바뀌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주민들은 “두 번 죽을 수는 없다”며 원안으로의 변경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터널 공사를 둘러싼 주민 불안이 반복되는 이유로 현행 지하안전평가의 한계를 지적했다.
■ 주민 “누구 의견을 수렴했다는 것이냐”
22일 국토교통부와 강남구청·주민들 설명을 종합하면, GTX-C노선이 이 지역을 지나기로 결정된 건 2021년 6월이다. 2020년 8월 수립된 GTX-C 기본계획안은 영동대교를 통과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이듬해 현대건설이 사업자로 선정되고 정부와 실시협약을 맺는 과정에서 노선이 변경됐다.
현대건설은 “원안의 경우 선행 사업이었던 동부간선지하화사업과 겹치는 범위가 많고, 환기구 위치가 TBM 공법(선풍기처럼 회전하는 원통형 굴착기를 이용해 터널을 파는 비발파 시공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곳에 있다”며 노선 변경을 제안했고, 국토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정부는 절차적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올해 8월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지자체별 주민설명회를 열었고, 변경 노선에 대한 주민 의견도 수렴했다는 것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도 “다이너마이트 발파를 하지 않는 TBM 공법을 적용해 주민들이 우려하는 소음이나 진동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470가구가 넘는 토지소유주 대부분은 주민설명회가 열렸다는 사실조차 전달받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지난달 20일 실시계획 승인 전 단계에서 토지소유주들에게 보상 관련 의견을 묻는 강남구청 공문을 받고서야 GTX-C노선이 자신들의 집 아래를 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의신청 기간 역시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주민 C씨는 “주거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를 이렇게 졸속으로 진행해도 되느냐”며 “A노선으로 인한 피해가 현재 진행 중인 상황에서 C노선까지 지나가게 한다는 건 우리를 두 번 죽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주민 불안을 ‘님비’로만 볼 수 있을까
청담동 빌라촌은 GTX-A 사업이 진행됐을 때도 주민 민원이 거세게 일었던 곳이다. 당초 압구정로 하부를 거쳐 한강 및 압구정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려던 계획은 사업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치며 올림픽대로 하부를 이용해 청담동 일대를 통과하는 계획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집단 행동은 정부와 민간사업자(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법적 대응의 어려움, 비상대책위원회 내부의 분쟁 등으로 인해 동력을 잃었다. 소음·진동 피해를 이유로 GTX-A 사업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냈지만 지난 3월 패소했다. 법원은 터널 공사로 인한 진동이 ‘허용범위’를 초과하지 않는데다 청담동 노선 변경으로 인한 실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민원 제기를 ‘님비(지역이기주의)’로 보는 여론이 특히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정부는 GTX 공사가 지하 깊은 땅, 즉 ‘대심도’에 이루어지는데다 TBM 공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주민들의 안전성 우려에는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실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청담동 구간의 공법은 정부나 사업자가 약속했던 TBM 방식에서 다이너마이트 발파를 동반한 NATM 방식으로 바뀌었다.
GTX 공사 이후엔 실제로 문 뒤틀림과 담벼락 균열, 땅꺼짐 등을 경험했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일부 전문가들 역시 GTX 공사가 이러한 피해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다이너마이트 발파를 동반한 NATM 방식은 주택에 강한 충격을 가하기 때문에 뒤틀림이나 균열같은 영구적 손상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불가피하게 NATM 공법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주택과 주민 안전을 확보하려면 발파를 작게, 자주 해야 한다”면서도 “문제는 이 경우 공사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민간사업자나 사업 주체인 정부는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터널 공사 과정에서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지반 침하량과 변형률을 며칠 단위로 계측해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GTX-C 통과 결정에 ‘들썩’
“졸속 행정…두 번 죽을 순 없다”
정부 “절차 하자 없어” 강행 뜻
안전성 평가 신뢰도 논란 되풀이
■ 반복되는 지하안전평가 신뢰도 논란
터널 공사에서 소음이나 진동보다 위험한 것은 터널을 파내면서 발생하는 지하수 유출과 이에 따른 지반침하다. 소음이나 진동 피해는 공사 당시에만 나타나는 반면, 지반침하는 철도가 운행하는 기간에 걸쳐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GTX-A는 지하 40m, GTX-C는 지하 60m 깊이의 ‘대심도’에 조성되기 때문에 지반침하 가능성 자체는 작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하지만 지반침하 위험도는 해당 지역 지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GTX 청담동 노선은 지난 11월까지 진행된 지하안전평가를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하안전평가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울~세종고속도로가 지나는 고덕동 아파트, 인천북항터널이 지나는 인천 삼두아파트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의 균열과 지반침하가 일어났음에도 지하안전평가를 통과하며 ‘공식적으로 안전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주민들이 터널 공사에 따른 피해를 법적으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 이찬우 한국터널환경학회장은 “소음이나 진동 피해를 입증하기 위한 계측을 민간사업자가 진행하는 데다, 유의미한 계측 데이터를 주민 등 제3자가 제공받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수곤 전 교수도 “주민들이 터널 공사로 피해가 발생한 이후 이를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지반침하나 균열과 같은 손상이 나타날 경우 사업자가 공사를 중단하고 피해를 배상한다는 특단의 조항을 인허가 조건으로 내걸지 않는 한 같은 문제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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