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까 두려워…다시는 시민이 거리에서 희생되지 않았으면”[아듀 2023 송년 기획-오송 지하차도 참사 그 후]

이삭 기자 2023. 12. 2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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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 인터뷰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집중호우가 쏟아졌던 지난 7월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돼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왼쪽 사진)을 벌이고 있다. 이번 사고로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직후 충북도청에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분향소가 마련됐으며, 현재는 청주시청 임시청사 별관 1층에 합동분향소가 설치돼 있다. 조태형 기자 phototom@kyunghyang.com
강 임시제방 쌓은 행복도시건설청
충북도는 지하차도 도로 관리 책임
청주시는 범람한 미호강 관리 의무
한 곳이라도 대처했다면 달랐을 것

“잊히는 게 두렵습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한 카페에서 지난 13일 만난 이경구씨(49)는 덤덤하게 말했다. 이씨는 지난 7월15일을 잊지 못한다. 당시 오송읍 궁평리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참사로 스물네 살 조카 A씨를 잃었다.

“아침 일찍 누님에게 다급하게 전화가 왔어요. 버스를 타고 KTX오송역으로 간다던 딸이 연락이 안 된다. 아무래도 지하차도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거 같다고.”

A씨는 구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고 다음날인 7월16일 오전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날 실종신고된 9명이 지하차도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하루 뒤인 17일에는 5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 이번 참사 희생자는 모두 14명이다. 11명 생존자도 있다.

이씨는 희생자 발인을 모두 마친 뒤 지난 7월26일 희생자 유족들과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협의회’를 발족했다. 오송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그는 “관련 기관들이 모두 개인정보라고 유족들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아 장례식장을 돌아다니면서 연락처를 받아 단체 대화방을 만들었다”며 “임시로 대표를 맡으려고 했는데 유족들 요구로 계속 대표를 맡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 등 유가족들은 미호강에 임시 제방을 쌓은 행복도시건설청을 비롯해 충북도와 청주시 모두 대처가 미흡했다고 지적한다. 충북도는 참사가 난 지하차도 도로관리 책임이 있고, 청주시는 범람한 미호강 관리 책임이 있다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이씨는 “각종 참사가 잇따르고 있지만 재난 대응 시스템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며 “미호강 범람 위기 연락을 받고 어느 한 기관이라도 대처에 나섰다면 오송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관련 기관에서 남발하고 있는 재난문자조차 ‘면피’라고 생각한다. 오송 참사 때도 똑같았다”며 “위험을 미리 알려준 것으로 소임을 다 했으니 시민들에게 ‘알아서 피하라’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이경구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가 지난 13일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잇단 재난에도 대응 시스템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며 지난 7월15일 발생한 충북 청주 흥덕구 오송읍 궁평리 궁평 제2지하차도 참사와 관련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10월의 ‘맹탕 국감’도 한탄스러워
김영환 지사, 사과 없이 면피 발언
행복도시건설청장은 출석도 안 해
시민단체 연대로 유족들 버텨내

지난 10월10일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국정감사도 “한탄스러웠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에게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즉답을 피하는 김영환 충북지사의 태도도 실망스러웠다. 이상래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은 국감장에 출석조차 하지 않았다.

이씨는 “국감에서 김 지사가 사과발언을 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솔직히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며 “‘수사 중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면피성 발언만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개탄스러웠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왔다. 폭우보다 폭설을 걱정해야 하는 계절이 됐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고통에 살아가고 있다. 정부가 약속했던 유가족 심리치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붉은 버스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생존자 중 일부는 아직도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씨는 회사가 있는 청주 오창에서 오송으로 출근할 때마다 참사현장 주변을 지난다. 그때마다 조카의 얼굴이 떠오른다. 붉은색 747번 급행버스를 봐도 마찬가지다. 이씨의 누나는 딸을 잃고 원래 살던 곳을 떠났다. 빈집을 보면 딸이 자꾸 생각나서다.

생존자들도 불면증과 죄책감·불안감 등을 호소하고 있다. 생존자 중 한 명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때문에 회사를 그만뒀다. 또 다른 생존자는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다 최근에서야 퇴원했다. 자살이 우려돼 강제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생존자도 있다.

이들의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심리치료는 지난달에서야 시작됐다. 유족 심리치료는 충북도 등의 지원을 받아 국립 공주병원 트라우마센터 직원들이 유족들을 찾아와 진행되고 있다. 이씨는 “유족들은 2주에 한 번씩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며 “충북도 등에서 지원받았던 심리치료라고는 치료비 지원과 약 처방 등이 전부”라고 말했다.

희생자들을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말들은 유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이씨 조카가 생전에 촬영한 버스에서 물이 차오르는 영상에도 ‘왜 탈출하지 않고 영상을 찍느냐’는 비난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씨는 “버스에서 탈출하지 못한 조카가 절박한 심정으로 영상을 찍어 보낸 것인데 그 영상조차 비난받고 있다”며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남의 일’이라고 시민들이 이기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한파가 찾아오는 겨울에도 이들은 거리로 나서고 있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를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들이 이들을 돕고 있다. 분향소 설치 문제로 충북도·청주시와 대립할 때도, 단체장들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때에도 지역 시민단체들이 이들과 연대해 힘이 돼 줬다.

유가족협의회를 결성한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도 시민단체들이다. 유족들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일주일 만에 철거 위기에 놓였던 분향소 운영을 100일 넘게 이어가고 있다. 오송 참사 100일에 맞춰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문화제 등도 함께했다.

이씨는 “시민단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외로운 싸움이 됐을 것”이라며 “처음에는 정치색 등으로 꺼리는 유족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28일 3대 국정조사 국회 처리 기대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재발 방지
재난 예방하는 전담조직 꾸려져야

유족들의 목적은 오송 참사의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전 행복청장과 충북지사, 청주시장을 중대 재해 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것도 그래서다. 단체장들이 시민 안전에 신경을 써 앞으로 이 같은 사고를 막아달라는 의미에서다.

유족들과 생존자들은 국정조사에도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사고 진상규명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 쌍특검과 함께 이태원참사특별법, 3대 국정조사(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처리할 계획이다.

“시민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버스 또는 길거리에서 목숨을 잃고 있어요. 이제 다시는 제발 이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들이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

그는 “오송 참사, 이태원 참사, 세월호 참사 모두 재난”이라며 “만약 이런 재난 희생자들이 시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면 똑같은 재난이, 희생자들이 또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시는 우리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재난상황을 예방하는 전담조직이 꾸려졌으면 한다”며 “시민들이 거리에서 희생되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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