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달라고 했다”…김대중 납치 그날 증언
‘일 경찰 문건’ 아사히가 공개
납치 현장에서 지문 채취 등
용의자 김동운씨 흔적 확보
사건이 발생한 지 50여년이 지날 동안 용의자 조사도 이뤄지지 못한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과 관련해 일본 경찰이 자료 일부를 공개했다. 당시 일본 경찰은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이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증거를 확보해 박정희 정권에 수사 협조를 요청했으나, 제대로 협조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신문은 25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일본 경시청에서 받은 ‘김대중씨 피랍사건 관계(수사상황)’ 문건의 내용을 공개했다. 이 문서는 사건 발생 25년 만인 1998년,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이 임박한 시점에 작성됐던 것이다.
앞서 김 전 대통령은 1973년 8월8일 일본을 방문하던 도중 도쿄 그랜드팰리스 호텔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이후 선박 용금호에 감금된 채 동해로 강제 압송됐다가 129시간 만인 8월13일 서울의 자택 부근에서 풀려났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는 사건의 유력 용의자 중 한 명이었던 중앙정보부 요원 김동운씨(당시 주일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를 범인으로 추정한 배경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당시 경찰은 사건이 일어난 호텔 투숙객들을 조사한 결과,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고 있던 남성으로부터 도와달라는 말을 들었다는 한 투숙객의 증언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움을 호소한 남성 곁에는 여러 남성들이 있었는데, 사진 대조 작업 결과 김씨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 범인이 남긴 배낭에 대한 수사에서도 김씨의 흔적이 확인됐다. 경찰은 해당 배낭을 판매한 업체를 수사해 구매자를 2명으로 특정했는데, 이들 중 김씨를 닮은 남성이 있었다는 증언을 업체 관계자로부터 얻어냈다. 앞서 경찰이 납치 현장에서 김씨의 지문도 채취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를 범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다양한 증거들을 확보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증거를 확보한 경찰은 사건 발생 한 달여 뒤인 1973년 9월 김씨의 임의 출석을 위해 외무성에 협조를 구했으며, 출석 시간과 장소에 대해서는 본인 상황을 고려해주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김씨를 비롯한 용의자들은 일본을 떠난 상태였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관련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관련자 출석 등에 대한 협조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그 뒤 정치적 합의로 모호하게 종결됐다. 당시 한국의 김종필 국무총리가 사건 발생 3개월 만인 11월에 일본을 방문해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와 회담을 벌였고, 일본 측이 수사를 사실상 끝내기로 합의한 것이다. 중앙정보부는 용의자인 김씨를 해임했으나 형식적인 것이었고, 그는 1년 뒤 복직해 8년여간 근무하다 1982년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 납치 사건은 지난 8월 발생 50년을 맞아 일본 언론들의 관심을 받았다. 경시청에 설치된 수사본부는 해체됐으나, 용의자가 국외에 있는 상태로 시효가 정지됐기에 현재도 형식상의 수사는 이어지고 있다. 다만 한국 정부에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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