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딸 안고, 가족 대피시키고…30대 2명 앗아간 화재 참변

이혜영 기자 2023. 12. 2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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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피해 자녀 안고 뛰어내린 30대父, 아이 살리고 하늘로
가족 모두 대피시킨 후 119 신고한 30대 남성도 대피 중 사망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성탄절인 12월25일 새벽 서울 도봉구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2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쳤다. 사진은 이날 사고 현장의 모습 ⓒ 연합뉴스

성탄절인 25일 새벽 서울 도봉구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30대 남성 2명이 숨졌다. 어린 아기를 품에 안고 화마를 피해 뛰어내린 30대 가장은 아이를 살린 뒤 하늘로 떠났고, 또 다른 사망자는 가족을 모두 대피시킨 후 마지막으로 자택을 빠져나오다 참변을 당했다. 

7개월 딸 품에 안고 뛰어내린 30대父, 하늘로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새벽 4시57분께 불길이 시작된 방학동 아파트 3층 바로 윗층에 살던 박아무개(33)씨가 화마를 피해 아래로 뛰어내렸다가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추락 당시 박씨는 자신의 품에 7개월 된 둘째 딸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박씨의 둘째 딸은 부친의 보호 덕분에 큰 부상 없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박씨의 부인 정아무개(34·여)씨는 2살배기 첫째 딸을 아파트 1층에 있던 재활용 포대에 던져 먼저 대피시키고 뒤이어 뛰어내렸다. 정씨는 어깨 등을 다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연기를 흡입한 첫째 딸도 둘째와 마찬가지로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박씨와 정씨는 두 딸을 안고 베란다로 나와 수건을 흔들며 "아이가 있다"고 소리치면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렸다고 한다.  

정씨가 부상을 입은 데다 자녀들과 병원이 흩어져 있어 박씨 가족들은 아직 제대로 빈소를 차리지 못한 상태다. 

성탄절인 12월25일 새벽 서울 도봉구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불이 나 2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쳤다. 사진은 이날 사고 현장의 모습 ⓒ 연합뉴스

가족 모두 대피시키고 신고 후 빠져나오다 참변 

10층에 거주하던 임아무개(38)씨도 11층 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지만 결국 숨졌다. 임씨는 부모님, 남동생과 함께 잠을 자다 불이 난 것을 인지하고 황급히 가족들을 깨워 대피시켰다.

임씨는 119에 최초로 화재 신고를 접수한 뒤 가족 중 마지막으로 집을 빠져나와 옥상으로 향했지만 결국 11층 계단에서 쓰러졌다. 임씨의 사인은 연기 흡입에 다른 질식으로 추정된다. 

임씨의 어머니와 남동생은 연기를 흡입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으나 위중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임씨 빈소는 노원구의 한 병원에 마련됐다. 황망하게 아들을 잃은 임씨의 아버지는 "갑자기 이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하느냐"며 오열했다.

아파트 주민에 따르면, 성탄절 새벽 3층에서 시작된 불길은 순식간에 위쪽으로 번졌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증명하듯 아파트 외벽 그을음은 17층까지 이어져 있었고, 2·3·4층은 유리창까지 모두 깨진 참혹한 모습이었다. 

주민들은 "'펑' 소리가 나서 나와봤더니 불이 났더라"며 "정신 없이 잠옷만 입은 채로 뛰쳐 나왔다"고 전했다.

성탄절인 12월25일 새벽 서울 도봉구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불이 나 2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쳤다. 사진은 이날 사고 현장의 모습 ⓒ 연합뉴스

3층서 시작된 불 순식간에 번져…합동감식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4시57분쯤 24층짜리 방학동 아파트 화재 신고를 접수한 후 오전 5시4분께 대응 1단계를 발령했으며 차량 57대·인력 222명을 동원해 화재를 진압하고 주민 200여 명을 대피시켰다. 대피 과정에서 주민 2명이 사망하고 2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불이 난 3층 집에는 70대 남녀 2명이 거주 중이었고, 모두 밖으로 뛰어내려 생명을 건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들은 허리 통증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화재 진압 이후 아파트 측은 경로당에 임시 대피소를 마련하고 적십자 구호 물품과 물·비상 식량을 배부했다. 

도봉구청은 현장에 통합지원본부를 꾸리고 이재민 관리 등을 하고 있다. 구청 측은 피해를 입은 아파트 주민을 위해 주변 3개 모텔에 이재민 임시거주시설도 마련했다. 9개 객실, 18명이 머물 수 있는 규모다.

경찰은 방화 등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오는 26일 합동 현장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휴일 새벽 발생한 화재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며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을 잃고 고통에 빠져계실 유가족 여러분들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부상을 입으신 모든 주민 역시 신속한 치료로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고 일상으로 회복하시길 빈다"며 "서울시는 자치구와 함께 이번 화재로 보금자리를 잃은 주민들이 빠른 시일 내로 귀가하실 수 있도록 재해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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