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장군 형제의 넋 기억하는 나무
스무 가구가 채 안 되는 전남 장성 단전리 마을의 어른들께 모두 마을 당산나무 앞으로 나오시라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말씀드렸다. 공영방송 인기 프로그램의 촬영을 위한 자리였다. 모두가 즐거운 표정으로 집을 나섰는데, 한 어르신은 아쉬운 표정을 내비치며 “갈 수 없다”고 했다. “어제 비린 것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나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을에서 이처럼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나무는 우리나라 느티나무 중에서 줄기둘레가 가장 굵은 것으로 알려진 ‘장성 단전리 느티나무’다. 천연기념물인 이 나무의 높이는 20m인데,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10.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느티나무라 할 수 있다.
마을에선 아주 오래전부터 이 나무를 ‘장군나무’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신성하게 모셔왔다. 장군의 이야기는 400년 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때 이곳에 사람의 보금자리를 일으킨 입향조 김충로에게는 견디기 힘든 아픔이 있었다. 함께하지 못한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충로의 형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무공을 세우고 전장에서 산화한 김충남 장군이다.
나무를 심은 건 그래서였다. 물론 마을 어귀에 나무를 심어 마을을 지키겠다는 뜻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전사한 형, 김충남 장군의 넋을 기리자는 생각이 더 컸다. 도강(지금의 강진) 김씨 집성촌인 이 마을 사람들도 훌륭한 선조를 기억하려는 입향조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얼마 뒤 나무를 심은 김충로도 전쟁터에 나가게 됐고, 그의 형처럼 다시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다. 나라에서는 조국을 위해 몸 바친 두 형제를 선무원종공신으로 제수했다.
장군으로 불리던 사람도, 그를 기리기 위해 나무를 심은 그의 동생도 장군이 되어 똑같이 전쟁터에서 사라졌다. 들녘의 나무만 주인을 잃은 아픔을 안고 무럭무럭 자랐다. 장군 형제의 넋이 담긴 들녘의 느티나무를 사람들은 그때부터 ‘장군나무’라고 불렀고, 해마다 정월 초닷샛날 장군 형제의 넋을 기리는 당산제를 올려왔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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