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전두광의 ‘절대적 악마화’가 우리를 구원할까
‘서울의 봄’은 절대적 악마의 현존 혹은 재림을 경고하고, 그 절멸을 다시 염원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영화 속 이태신이 절대적 선이라고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물을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난 이태신에게서 그 어떤 씻김의 느낌도 갖지 못했다. 그 역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키워주었을 따름이다
갑작스럽게 침묵이 흘렀다. 아니, 침묵이 하늘에서 쿵하고 내려앉은 듯했다.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라는 격한 구호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2000명은 족히 넘었을 이들이 동시에 입을 닫았다. 아니,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말을 잃었다. 5월의 따가운 햇살만이 대기를 채웠다. 그사이에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길이 오로지 한 사람에게 맞춰졌다. 그가 누구였길래, 또 무엇을 했길래 그랬던 것일까?
1988년 5월18일의 일이었을 거다. 8년 전인 1980년 5월의 광주학살 이후 최초로 전국의 청년대학생들이 광주로 집결해 공개적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그 와중에 나온 구호가 바로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였다. 전두환을 위시로 한 신군부 독재 세력에 대한 응축된 분노가 표출되고 처벌의 극단을 요구했음을 알려준다. 당시 대통령은 노태우였다. 그는 전두환과 함께 광주학살을 자행한 신군부 세력의 핵심이었다. 그랬다. 지금껏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이들이 주로 담론화한 ‘주류 역사’는 1987년 6월 항쟁을 승리로 채색하지만, 그 승리의 결과는 신군부 세력의 변형적 연속성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노태우 정권은 광주로 향하는 청년대학생들을 막아섰다. 노태우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형식을 빌려 권좌에 앉았으나, 광주학살의 전모가 드러날 가능성을 키워서는 안 되었다. 가뜩이나 취약한 신군부 계승세력의 정당성이 완전히 허물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민주화 체제로의 조속한 이행에 대한 시민사회적 요청과 그것을 선도하는 청년대학생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또 노태우 정권은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선언하며 출범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때다. 광주로 향하는 발걸음을 마냥 막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전국의 이곳저곳에서 청년대학생들을 태우고 출발한 버스가 광주로 들어가는 여러 길목에서 경찰들의 제지로 가다 서다 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였으나, 결국은 수많은 청년대학생들이 광주에 들어설 수 있었다. 전두환 독재정권 시기 내내 금단의 구역과 다름없던 망월동 묘역에 가서 참배도 할 수 있었다.
청년대학생들이 광주 진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학살의 직접적 희생자이자 저항자인 광주 시민들의 ‘한(恨) 서린 환대’도 있었다. 5월18일 전날 밤이 되어서야 전남대 등에 도착해 짐을 푼 청년대학생들은 조를 나누어 충장로, 금남로 등 광주 시내와 대학가 주변 거리로 나가 광주 시민들과 함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심야 가두시위를 벌였다. 경찰에 막혀 주택가 골목에 갇혀 있노라면, 거주민들은 경찰에게 물을 부어대며 시위대의 앞길을 막지 말라고 항의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들의 시위 진압으로 인해 꽤 많은 시위 참여자들이 연행되기도 했고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인근 민가로 도피한 청년대학생들 중에는 새벽녘에 거주민들이 차려준 밥을 먹고 돌아온 이도 있었고, 찢기고 물에 젖은 자기 옷 대신 집주인과 그 가족이 빌려준 옷을 입고 나타난 이도 있었다.
집회장서 한 여인에 씻어냄의 느낌
‘성스럽고 거룩했던 그 밤’을 지내고 맞이한 새날이 바로 1988년 5월18일이었을 것이다. 임시 숙소였던 대학 강의실에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운 청년대학생들은 광주지역의 여러 대학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그중에는 당시 대학 1년생인 김윤철도 있었다. 그는 전남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했다. 집회장은 대운동장 한쪽에 중앙연단을 설치하고 운동장과 관람석에 둘러앉아 있게끔 되어있었다. 김윤철은 중앙연단에서 멀지 않은 오른쪽의 관람석 어딘가에 동료들과 함께 앉아 집회를 이끄는 이들의 연설을 듣고 구호를 따라 외치고 있었다. 그들 구호 중 가장 날 서린 것이 바로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였다. 꼭 그런 식의 구호를 외쳐야 하나, 뭐 그런 다소 복잡한 생각을 얼핏얼핏하며, 구호보다는 불끈 쥔 주먹질로 군부세력 척결의 결연한 의지를 표하는 데 더 집중했다. 여하튼 집회장은 청년대학생들의 맹렬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5월의 넓고 푸른 하늘 그 어느 곳에도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나 할까. 지난밤 경찰에게 잡혀간 동료들이 있어 그들을 즉각 풀어줄 것을 요구하느라 한층 더 기세를 올린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바로 그때였다. 거칠 것 없던 집회장의 기운을 한순간에 잦아들게 만들고, 고요함 혹은 적막함마저 감돌게 만든 일이 벌어진 게. 하얀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한 여성이 홀로 어디선가 불현듯 나타나 양산을 펼쳐 쓴 채 집회장인 대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저쪽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집회 참석자 중 어느 누군가가 ‘그녀’를 먼저 본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고요해졌던 것을 보면. 집회장이 일종의 원형경기장 형태를 띠고 있었으니, 대다수 참석자가 동시에 그녀를 보았을 것이다. 신기했다. 수군수군 속닥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법에 걸렸던 것 같았다. 그녀의 걸음새는 느릿느릿하지도 않았지만 급한 모양새도 아니었다. 무척 단정하고 고왔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아했다. 그렇게 기억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얼굴의 피부와 가슴속 깊은 곳에서 감탄의 미소를 자아낸 것 같기도 하다. 큰 날의 도끼로 목을 치고 몸뚱어리의 살점을 뭉툭뭉툭 잘라내 선혈이 낭자한 벌판을 정갈한 물로 말끔히 씻어낸 느낌이었다고 할까.
좌절감이 낳은 ‘망상 속의 그녀’
양산을 쥐고 있지 않은 다른 한쪽 손에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끈을 엮어 만든 북홀더로 고정한 책과 노트를 들고 있었던 것을 보면 학생이었던 것 같다. 가로지른 대운동장의 한쪽 끝에 위치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 것을 봤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었겠는가. 어느 누구도 그녀가 누구인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 역시 신기한 일이었다. 그녀가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집회장에는 다시 구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 하지만 집회 현장도, 그녀도 모두 현실이 아니라 꿈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살갗에 닿은 5월의 햇살마저도. 눈부심 속에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그날 이후 35년하고도 7개월이 흐른 얼마 전, 영화 <서울의 봄>을 봤다. 2030세대가 많이 본다더니, 대학 1년생인 둘째아들이 “봐야 한다”는 말을 먼저 꺼내서 보았다. 정작 같이 보지는 못했다. 나는 아내와, 24세 청년인 첫째는 자신의 여자친구와 따로 보았다. 둘째는 아직 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볼쯤에는 500만명이 봤다고 했다. 200석인가 되는 좌석이 반 정도 찬 것 같았는데, 내 또래 혹은 연상으로 여겨지는 이들이 반 정도였고, 20대들로 보이는 이들이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보다 연상인 것 같은 한 남성 관객이 상영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게 보였다. 그도 많은 이들처럼 화가 치밀어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중간중간 여기저기서 탄식의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들었다. 난 눈물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소름이 돋기도 했다. 영화는 전두광을 그냥 악마도 아닌 ‘절대적 악마’로 그려내는 듯했다. 9사단장 박해준(노태우)을 비롯한 12·12 쿠데타 가담자인 똥별 허수아비 장군들이 마지못해 악의 길을 택한 ‘상대적 악마’라면, 그들을 악의 사단으로 이끈 전두광은 악의 길을 택하는 데에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절대적 악마였다. 쿠데타에 성공하고 혼자 화장실에서 벽을 치며 괴성을 지르는 전두광의 실루엣은 그야말로 절대적 악마의 형상이었다.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라는 구호가 다시 떠올랐다. ‘절대적 악마의 절멸에 대한 염원의 표현’이었던가라는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서울의 봄>은 절대적 악마의 현존 혹은 재림을 경고하고, 그 절멸을 다시금 염원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그녀가 떠올랐다. 1988년 5월18일 전남대학교 집회장에서 봤던 그녀가. 그때 가졌던 ‘씻어냄’의 느낌이 간절하게 그리워졌다. 그 느낌을 선사한 그녀가 절대적 악을 절멸시키고 우리를 구원할 절대적 선(大천사?)이 아닐까라는 몽상에 젖어들기도 한다. 전두광 같은 그 누군가가 절대적 악마임을 알아채거나, 그것을 위해 그 누군가를 절대적 악마로 그려내는 것만으로 ‘구원의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라는 좌절감이 쌓여온 탓일까? 그녀에 대한 기억도 그런 좌절감이 낳은 망상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 이태신이 절대적 악의 절멸에 실패하긴 했어도, 절대적 선(정의의 사도)이라고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물을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답을 대신하면, 난 이태신에게서 그 어떤 씻김의 느낌도 갖지 못했다. 그 역시 구원의 평온함이 아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키워주었을 따름이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 및 실천교육센터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세계와 시민’ ‘정치의 인문학적 탐색’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 ‘시민과 세계’ 편집위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노회찬정치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정당> <헬조선 3년상> 등의 저서와 ‘노동존중 정치와 노회찬의 6411정신’ ‘한국 불평등 민주주의의 정치사적 기원’ 등의 논문이 있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실천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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