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향기를 입는다
김수미 2023. 12. 25. 20:14
스몰 럭셔리 ‘니치 향수’ 인기
코로나 이후로 향수 마니아 급증
여성은 꽃향, 남성은 나무향 “NO”
성 구분 깨지고 중성적 향기 ‘선호’
반려동물과 커플향 등 이색 제품도
코로나 이후로 향수 마니아 급증
여성은 꽃향, 남성은 나무향 “NO”
성 구분 깨지고 중성적 향기 ‘선호’
반려동물과 커플향 등 이색 제품도
“잘 때 뭘 입고 자나요?”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메릴린 먼로는 “샤넬 넘버 파이브요”라고 대답했다. 이후 샤넬의 향수 ‘넘버 5’는 ‘메릴린 먼로의 잠옷’으로 불렸고, 향수는 ‘뿌리는 것’이 아닌 ‘입는 것’이 됐다. 향수는 누군가에겐 잠옷이고 누군가에겐 드레스, 명함이 될 수도 있다. 화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번지고 옷도 철이 지나면 빛이 바래지만, 향기는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 아니라 ‘향수’다.
◆‘틈새’ 공략하다 주류가 된 니치 향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마스크를 문신처럼 하고 다니면서 립스틱 등의 색조화장품 업계가 고사 위기에 직면했을 때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린 것이 바로 향수다. 메이크업을 포기해야 했던 여성들은 코끝을 자극하며 온몸을 기분 좋게 감싸주는 향수로 기분 전환을 하고 자신을 표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후에도 향수의 인기가 계속되면서 ‘코르가즘’(코+오르가즘)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다양한 종류의 향수를 시향하고 구매할 수 있는 향수 편집숍과 ‘퍼퓸 바’(Perfume Bar)도 속속 생겼다. 백화점 1층 명품 브랜드 옆에는 화장품 대신 향수 브랜드들이 입점하고,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세로수길에는 ‘딥티크’, ‘바이레도’, ‘아로코,’ ‘논픽션’, ‘SW19’ 등의 플래그십스토어가 잇따라 들어서며 ‘향수 로드’가 형성됐다.
특히 ‘나만의 향’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조향사들이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든 프리미엄 향수, 이른바 ‘니치(niche) 향수’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니치 향수는 별도의 레시피로 소량 생산하기 때문에 50㎖에 30만∼50만원대로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작은 사치를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스몰 럭셔리’, ‘소확행’ 아이템이 됐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8년 5152억원 수준이던 국내 니치 향수 시장은 올해 9213억원, 2025년에는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니치 향수가 ‘틈새’가 아닌 주류로 부상한 것이다.
◆향수도 젠더리스… 반려동물 시장까지 확대=향수 시장의 개화 속에 눈에 띄는 것은 기존 전통적인 향수들이 고수하던 ‘여성=플로럴(꽃향)’, ‘남성=우디(나무향)’ 향에서 벗어나 성(性) 구분이 깨지고 남녀 모두 즐길 수 있는 중성적인 향수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향수업계 관계자는 “과거 남성들은 허브 향이나 점잖은 인상을 주는 우디 향을 선호했는데 최근엔 깨끗한 비누 향이나 부드러운 꽃 향도 많이 찾는다”면서 “패션에서 젠더리스(genderless)가 유행하듯 향수에도 성 구분이 없어지고, 대부분의 니치 향수는 아예 중성적인 향을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꽃, 과일, 허브 등에서 추출한 향을 사용하거나, 독특한 조합을 통해 새로운 향을 만들어내는 향수들도 인기다.
조말론, 딥티크처럼 니치 향수로 시작한 향수 브랜드의 마니아가 늘어나자 ‘더 특별한’ 니치 향수에 대한 욕구는 더 커졌다. 너도나도 찾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대신 남들이 잘 모르는 ‘신명품’을 선호하듯 더 희소성 있는 브랜드와 향을 원하는 것이다. 이에 패션업계는 새로운 니치 향수 브랜드를 경쟁적으로 유통·론칭하며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딥티크, 바이레도, 산타마리아노벨라, 메모파리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올해 상반기에만 프랑스 ‘힐리’와 이탈리아 ‘쿨티’ 등 2개 신규 니치 향수 브랜드와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9월에는 이탈리아 뷰티 브랜드 돌체앤가바나뷰티를, 11월에는 프랑스 럭셔리 패션하우스 꾸레쥬의 꾸레쥬 퍼퓸을 향수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특히 산타마리아노벨라는 주인과 반려동물이 커플 향을 맞춰 쓸 수 있도록 사람의 향수와 같은 향의 반려동물 전용 데오도란트, 샴푸 등도 선보였다.
지난해 프랑스 니치 향수 편집숍 브랜드 ‘조보이’를 들여와 운영 중인 LF는 일반적인 알코올 베이스와는 달리 고유의 향이 변질되지 않도록 고안된 ‘워터 베이스’ 향수로 차별화한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를 비롯해 ‘소라 도라’, ‘조보이’, ‘제로보암’ 등 10개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톰 브라운 향수를 국내에 전개하고 있는 삼성물산 패션부문도 최근 프랑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오 드 퍼퓸 레 뉘’, 일 년에 새로운 향을 딱 하나씩만 선보이는 프레데릭 말의 신제품 ‘헤븐 캔 웨이트’ 등을 새롭게 출시했다. 특히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클린 뷰티 전문 편집숍 레이블씨(Label C)는 각기 다른 2~3가지의 향을 섞어 뿌리는 ‘향수 레이어링’ 트렌드에 맞춰 미국 메종루이마리의 베스트 판매 제품 5개로 구성된 ‘퍼퓸 오일 디스커버리 세트’를 선보였다.
해외에서는 KFC스페인이 치킨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까지 출시했다. 닭다리라는 뜻의 에두아르도(Eduardo)에서 착안한 ‘오 두아르도(Eau D’uardo)’는 닭다리 모양의 용기에 담았지만 치킨 향은 아니다. KFC의 오리지널 레시피를 기반으로 제라늄, 만다린, 핑크 페퍼, 베르가못을 배합해 알싸하면서도 상큼한 향을 내는 유니섹스 향수이다. 스페인에서 2만5000개 한정으로 출시돼 한국에서는 만날 수 없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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