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극단적 초과 노동’ 허용한 대법 판결, 노동자 건강권 무시다
하루에 8시간을 초과한 ‘연장 근로’의 주간 합산이 12시간을 넘어도 1주일간 총 노동시간이 52시간만 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주일간 법정근로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이 한도일 뿐 일일 연장근로 길이까지 별도로 규제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한 것이다. 판결 취지대로라면 ‘이틀 연속 21.5시간 근무’ 같은 극단적 초과노동도 합법이 된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고 일·생활 균형을 보장하기 위해 2018년 도입된 주52시간제의 입법취지를 대법원이 정면으로 거스른 것이어서 매우 유감스럽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가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 논리는 주52시간제를 역산하며 나왔다. 연장근로를 포함해 주당 근무시간 총량이 52시간만 넘지 않는다면 사업주에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내릴 수 없다고 봤다. 이는 주간 근로시간이 52시간 이내더라도 연장근로 합계가 12시간을 넘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보는 고용노동부의 계산법과 어긋난다. 특히 이번에 법리를 다툰 항공기 객실청소업체처럼 주·야간 교대근무 노동자들에게 매우 불리하다.‘몰아치기’ 노동을 하더라도 주52시간 미만이라면 노동여건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워진다. 판결대로라면 노동자가 하루에 2.5시간의 휴게시간을 빼고 21.5시간까지 일해도 된다. 1주일간 이틀만 일할 경우 주 43시간이 돼 ‘연장근로 주 12시간 한도’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일일 근로시간을 8시간으로 정해놨을 뿐, 연장근로에는 상한선을 두고 있지 않은 근로기준법의 허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더라도 대법원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근로조건을 두도록 한 헌법 정신을 간과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판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중남미를 제외하면 최장인 한국의 장시간 노동 관행을 바꾸지 않는 이상 저출생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과도 동떨어진 것이다. 사법부가 근로기준법에 따른 노동시간이 표준으로 정착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 채 형식논리만 따진 건 아닌지 묻게 된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주 69시간’ 근로시간 제도개편에 윤석열 정부가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와중에 ‘주 52시간제’도 불필요한 혼란에 휩싸이게 됐다.
정치권은 연장근로시간 상한을 두도록 하는 등 근로기준법 허점을 보완하는 법개정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노동부는 이번 판결의 행정 적용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노사정 합의 없이 강행할 경우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시대착오적 장시간 노동관행을 재이식하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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