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조지훈의 시 '낙화'와 한국외교

김충제 2023. 12. 2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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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조지훈 시인의 시 '낙화'를 우리는 학창 시절 한 번쯤은 공부했거나 들어본 적이 있다. 조 시인은 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삶의 무상과 비애'를 노래했다. 그런데 지금 이때 낙화를 한국 외교와 관련해 인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조태열 외교장관 후보자는 조 시인의 3남이라고 한다. 첫 소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에서 필자의 직업병이 도졌다. 한국 외교가 지기로소니 환경을 탓하랴.

조 후보자는 20일 첫 언론 접촉에서 중국 관련 새 인식을 내보였다. "한중 관계도 한미동맹 못지않게 중요한 관계(로서) 조화롭게 양자 관계를 유지할 방법을 찾겠다" "(전 정부에서) 한미동맹, 한일 관계, 한미일 안보협력이 다소 소홀해 윤 정부에서 이를 복원시키려 한미·한일·한미일에 치중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는 왼쪽으로 가는 시계추의 균형을 잡기 위해 오른쪽으로 가는 과정에서의 현상"이라고 했다. 환영할 만한 인식과 발언이다.

조 후보자는 "중국도 미중 경쟁의 여러 파장이 한중 관계에 미치는 불가피한 점을 잘 아는 것 같았다"고 지난해 방중 인상을 전했다. 하지만 인상은 인상이고 우리 입장을 용인해주지는 않는다. 심정적 이해와 실체적 국익은 다르다. 올 상반기 미중 관계가 좋지 않을 때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높았으나 개선된 미중 관계 속 한국의 가치는 낮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니다. 그 때문에 일단 윤석열 1기 외교는 자연의 섭리처럼 변해야 한다. 네 가지를 기대한다.

첫째, 2기 대중외교는 과도한 의욕보다는 현상유지라도 할 수 있어 관계의 불안정을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 후보자는 "국제질서가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중차대한 시기에…혼신의 노력으로 우리 외교의 입지를 넓히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2기 외교가 1기 외교와 완전히 틀을 달리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한중 관계의 대폭 개선을 낙관하기 어렵다. "세계 최강 핵국가 미국과 일체형"이 되어야 한다는 1기의 동력과 관성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 때문에 결이라도 달랐으면 한다.

둘째, 북한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의 관계는 개선되어야 한다. 조 후보자는 "한미일과 북중러 대립구도 강화는 우리 외교를 위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전 정부에서부터 북중러 관계는 강화돼왔고, 한미일 협력이 북중러를 밀착시킨다는 것은 현실 호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한미일을 통해 안보적 최선을 다하듯 북한은 북한대로 최적의 조합을 만들려 한다. 그 때문에 중국을 설득해 조금이라도 우리 쪽으로 당겨와야만 북한 위협을 약화시킬 수 있다.

셋째, 대중국 불필요한 발언과 대응을 피해야 한다. 대통령의 보수적 사고와 우파적 대외정책은 바뀌기 어렵더라도 외교적 타이밍만은 신중해야 한다. 지난달 샌프란시스코 정상회의 기간 시진핑을 만나고자 하면서도 중국 측이 가장 민감해할 수 있는 행보를 거침없이 했다. 한국·유엔사 국방장관 회의를 방미 직전에 개최한 것은 만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꼭 필요했다면 샌프란시스코 만남 이후에 했어야 한다.

넷째, 향후 시진핑의 방한을 너무 강조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진핑이 오는 것이 한중 관계의 척도가 될 수는 있으나 절대 목표는 아니다. 오지 않고도, 가지 않고도 양국 관계가 나아질 수 있다. 과유불급보다 이미 있는 자원들의 재배치와 적절한 타이밍만으로도 관계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매달리는 모습은 결코 상호존중도 국익도 아니다.

마지막 소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에서 시인은 꽃이 지는 것을 보면서도 부는 바람을 탓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다. 한국 외교환경은 결코 좋았던 적이 없다. 어떤 도전이든 극복하고 또 극복해야 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운명이다. '낙화'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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