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울릉도의 대변신<6>막걸리에서 와인 그리고 수제맥주까지
지난 3월21일 사동리의 농업기술센터에서 특산작물을 활용한 ‘가공제품 품평회’를 가졌다는 소식이다. 울릉도에서 생산되는 가공제품이라고 해봐야 명이와 부지갱이, 더덕, 마가목 그리고 호박 같은 원료 정도여서 가공품 개발에는 한계가 있을 텐데 품평회까지 할 정도라고 하니 뭔가 변화가 있는 것 같아 호기심이 발동했다.
생채로 즐기던 명이는 농가재배가 활착되면서 절임과 김치로 변모하여 이젠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게 되었고 남양리의 김연만씨가 개발해 만들고 있는 ‘명이빵’도 십여년 전에 개발되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부지갱이는 만두소로 개발되어 로칼만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도 오래되었고 더덕과 마가목 또한 즙을 내어 주스나 비닐 팩에 담아 울릉도 내 관광지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울릉도하면 ‘울릉도 호박엿’을 연상할 만큼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던 호박엿과 호박젤리, 캔디가 오래된 지역특산 가공품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시류에 맞는 제품개발의 한계로 인해 정체된 가운데 조현덕씨가 ‘호박빵’을 개발하여 ‘명이빵’과 함께 경주의 ‘황남빵’같은 명품 지역 빵으로 한 단계 승화시켜 자웅을 겨루고 있다.
내가 간혹 고향에 다니러 가면 꼭 찾아가는 곳이 학포가 내려다보이는 만물상 전망대다. 푸른색이 끝없이 펼쳐져있는 바다를 보며 이곳 언덕에 서서 긴 호흡을 가다듬곤 했다. 저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 있을 미지의 세계로 향해 가슴 북받치는 유년기의 꿈을 되씹어 보던 멋진 곳이다.
이곳 가계에서 더덕 주스와 마가목즙을 몇 차례 사먹던 기억이 난다. 고향 후배들이 가공식품을 개발하려고 동분서주하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특히,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권기풍 향우가 유별스럽게 가공품 개발에 오랫동안 열정을 쏟았던 기억이 난다. 울릉도에서 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개발하려했고 서울의 향우회 행사에도 울릉도에서 만든 것이라며 이런저런 상품을 보이며 열성적으로 판촉활동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울릉도의 특산물을 활용한 가공식품이란 것이 유치단계에 머물러 있었을 뿐 품격 있고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고급 제품의 제조는 여전히 요원한 상태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전국 지역특산물 전시회에 매년 내 놓는 상품이라고 해봐야 오징어나 미역 같은 수산물을 포함한 이런 토산품 들이 주였다.
2017년6월 달라스시에서 개최된 미주한인체육대회에 울릉군이 배드민턴과 골프 종목에 출전을 했는데 이때 내 놓은 홍보용 특산품도 대동소이했다. 품목은 여전히 명이절임, 부지갱이, 삼나물, 고비, 호박엿, 오징어 그리고 미역 등이었다.
지난 9월에는 울릉도 로컬기업인 독도문방구가 ‘울릉주모 호박엿 막걸리’를 출시했다. 울릉도에서자생하는 우산고로쇠와 호박조청을 함유한 막걸리라고 한다. 아직은 울릉도 현지에서 생산 않고 있지만 ‘스몰브랜딩’이 디자인을 맡고 ‘같이양조장’이 OEM생산을 하여 1차분 300병을 출시했다고 한다.
판매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울릉도에서 현지생산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게다가 지난 12월7일 중소기업부가 주관하는 강소상공지원사업 로칼 분야에 도전하여 김민정 대표가 2위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이제 특산물을 이용한 울릉도의 가공식품이 전국적으로 외연을 넓히는 듯하다.
내수전의 ‘물레방아 주가’도 30여년 전부터 고급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나리분지에서 하루 2만톤씩 솟아나는 깨끗한 물이 있고 여기에 호박과 마가목 같은 특작물이 있으니 고인이 된 조원구 사장은 생전 이를 이용해 세 번 빚는 ‘삼양주’기법을 도입하여 프리미엄 막걸리를 생산판매했다 . 800ml 호박막걸리다. 이제 곧 네이버스토어에서 전국 택배주문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동네마다 술도가(都家)가 있었다. 도동은 물론이고 사동리와 저동리 곳곳에 막걸리 공장이 있었다. 지금처럼 막걸리 병이 따로 없던 시절이어서 오로지 양은주전자를 들고 술도가에서 사야했다.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주전자 하나에 가득 담아 들고 오는 길에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무슨 맛인지 궁금하여 쭉쭉 빨아 마셨던 그 막걸리가 이제 멋진 포장과 브랜드명 그리고 특작물을 혼합한 고급 막걸리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반세기 전 도동리에는 ‘성인’소주 공장이 있어 지나다니는 길 가에 고두밥을 가마니에 올려놓고 말리곤 했었다. 흰쌀로 된 고두밥을 몇 차례 슬쩍 훔쳐 먹었던 옛 날이 떠오른다.
저동항에 도착하면 복합관광문화 여행자센터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둘러본 적이 있었는데 모든 굿즈의 디자인이 획기적이었다. 물론 울릉도에서 전부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원료가 울릉도산인 더덕포장은 가히 일등급 수준이라고 할만 했다. ‘울라사계’라는 브랜드로 맥주와 고로쇠수, 명이김치와 호박엿 등 종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현대적인 포장 디자인이 울릉도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는 것 같았다.
지난 6월에는 천부리에 수제맥주공장이 들어섰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향토기업인 정성훈 대표가 운영하는 울릉부루어리(Ulleung Brewery)에서 만든 수제맥주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2023 농식품테크 스타트업 창업박람회’에 참가하여 해외바이어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미네랄 성분구성이 프랑스 에비앙을 능가하는 울릉도 용출수를 이용한 수제맥주 4종류를 개발 출시했다. 2023년9월의 ‘잠들지 않는 섬’ 나리분지 별밤행사에도 이 수제맥주가 한 몫을 했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여름밤 별들과 아름다운 음악이 함께하는 나리분지에서 울릉도산 수제맥주를 함께 마시며 기쁨을 누릴 수 있다니 정말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 외에도 울릉산림농산이 태하리에 1,254㎡의 공장을 짓고 ‘울릉보감 마가목 진액’과 스틱형으로 된 울릉엉겅퀴와 더덕 진액 그리고 마가목 콜라젠도 생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LG생활건강과 울릉군이 합작한 ‘울릉샘물’도 생수를 전국으로 곧 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날 행사에 울릉군 농산물가공 아카데미교육생, 슬로푸드회원, 농업인단체 회원, 지역 가공업체 대표 등 40여명이 참석하여 마가목와인, 호박와인, 마가목발효주, 특산물 분말제품과 부지갱이 냉동만두의 제품개발과정 소개와 시음, 시식 평가뿐만 아니라 상품화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고 하니 이제 이들이 함께하고 있어 밝은 미래가 보인다.
남한권 울릉군수는 “울릉도 고유 특산작물을 활용한 다양한 가공제품을 연구개발하고 그 성과가 가공창업으로 이어져 울릉군 농업경쟁력 강화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에메랄드 관광섬에 고급화된 특산가공품이 함께 어우러진다면 품격 있는 울릉도 관광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이제 조금씩 그 조짐이 보이는 것 같아 변화의 물결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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