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석 칼럼] 의사 수급 조절도 경제원리 따라야

2023. 12. 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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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석 아름다운서당 이사장·前 노동부차관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최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의대준비반을 운영하는 학원이 늘고 있다는 뉴스는 충격적이다. 정년이 없고 고소득 직군인 의사에 대한 선호현상이 이 정도에 이른 것인가. 한편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의사협회는 이런 방침에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산부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의 필수 의료인력 부족과 지방 의료인프라 낙후 문제를 풀기 위한 방안으로 의대 정원 카드를 꺼낸 것인데, 과연 이런 문제가 의대 정원의 증원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의대정원 이슈와 관련한 다른 문제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다. AI, 반도체, 바이오를 위시한 첨단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과 함께 고급 기술인력이 산업의 경쟁력,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이공계 최고 인력이 너도나도 의대로 몰리는 바람에 공과대학은 차순위로 밀리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EU 선진국이나 중국, 인도 등 경쟁국까지도 최우수 인재가 공과대학을 지망하여 첨단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세계 흐름과 동떨어진 특이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의료산업 등 주요 부문에서 시장경제의 수요 공급 조절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국민 다수인 소비자 계층은 의료인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반면 정작 의사들은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문제 때문에 의료인력이 편중돼 일부 부족하게 보인다고 지적한다. 경제학 원리를 적용한다면 수요 공급에 불균형이 발생하면 불균형을 초래한 요인을 찾아 제도적인 장애를 해결하며 경제주체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일이다.

학생들이 공대보다 의대를 선호한다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로 보면 의대를 졸업할 때의 보수와 재임기간 등의 보상이 공대를 졸업할 때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AI 등 첨단 과학기술 인력의 보수는 의사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니 첨단 테크기업 취업에 유리한 수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등에 인재가 몰리게 된다.

시장경제의 수급조절 원리에 비추어 보면 무엇보다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이므로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늘려야 할 것이다. 예컨대 심장수술, 뇌수술 등은 고난도 업무에 위험부담이 큰 분야라서 서로 기피한다면 그 기술에 대한 보상을 다른 분야보다 대폭 확대하고 법적인 위험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경제학적 해법이다. 수요가 공급보다 크다면 가격(보수)이 오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니 그런 조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원 확대는 다음 단계의 해결책이다.

공학분야도 마찬가지다. AI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는 수요가 급증하는데 우리 대학의 실정은 학과정원, 커리큘럼, 교수진 개편 등의 경직성 때문에 이를 늘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 입사하고 나서도 다른 직종과의 형평성 문제로 보수를 대폭 늘리는 것도 쉽지 않고 근속기간도 상대적으로 길지 않다. 입사서류에 출신학교, 학력 등을 기재하지 못하게 하는 블라인드 채용까지 의무화해 어떻게 우수한 인재를 확인하고 채용할 수 있겠는가. 기업의 채용과정에 이렇게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보다는 수요 공급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부문간 의료수가 조정, 정원조정, 커리큘럼 개편, 교수진 반대 등의 문제는 내부의 이해상충 문제일 뿐 해결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해당 분야의 핵심 인력확충이 필요한데도 소수의 기득권층의 반대로 해결할 수 없다면 국민이 납득하겠는가. 시장경제 원리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면 설득 논리가 단순해진다. 자신들이 그동안 누린 기득권 수호 외에는 다른 반대 명분을 찾기가 어렵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명예롭게 양보할 명분을 주어 기득권층의 반대를 지속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정성을 다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이 끝까지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반대한다면 마지막으로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이익은 양보하도록 결단하는 것이 사회에서 권한을 위임받은 지도자의 책임이다. 국가의 리더라는 사람들은 그런 정도의 부담과 책임은 당연히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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