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호텔셰프에서 `만인의 한끼` 셰프로… "생명 살리는 음식 만들고 싶어요"
우연히 軍에서 접한 책에 흥미… 조선호텔서 10여년 기본다져
평창올림픽때 '컴플레인 없는 최초대회' IOC위원장의 찬사도
식물성 대안식 주목… "몸 낫게할 맞춤형 치유식 개발하고파"
전북 임실의 산과 들을 뛰놀던 꼬마가 있었다. 흙과 돌을 갖고 놀며 자연 속에서 창의력을 탑재한 이 아이는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 해병대에 입대하고, 군에서 '사랑과 우정'이라는 책을 만나 셰프의 길을 꿈꿨다.
이 청년은 청와대와 국무총리공관, 각국 대사관 VIP 행사를 전담하는 조선호텔 셰프로 성장했다. 지금은 값비싼 호텔 요리가 아닌, 보다 많은 사람이 합리적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메뉴 개발자로 살아가고 있다. 바로 최정용(53·사진) 신세계푸드 메뉴개발팀장(수석셰프)의 이야기다.
외식, 단체급식, 식물성 대안식, 음료, 간편식, CK(센트럴 키친) 상품화 등 신세계푸드 F&B 영역의 모든 메뉴 개발과 기획·품질 유지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최 팀장에게서 음식과 사랑에 빠지게 된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 팀장과 음식의 인연은 '사랑과 우정'이라는 책을 읽던 해병대 복무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대인 꼬마가 학살을 피해 레스토랑 주방 보조로 취업하면서 노력과 자기계발을 통해 유명 셰프가 되고 세계적인 미식 평론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었다.
최 팀장은 "책을 읽고 셰프라는 직업에 흥미를 느꼈는데, 그 후 우연히 라디오에서 운명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며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판검사, 의사 기업인 등이 5위 안에 드는데, 선진국에선 셰프라는 직업이 5위안에 든다는 얘기였다. 그때 생각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경제가 발전하면 셰프가 각광받는 직업이 되겠다고"라며 운명의 순간을 회상했다.
책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전역 후 경주호텔학교에 입학해 요리에 입문했다. 이후 1994년 조선호텔에 입사해 10여년간 조리팀에서 일하며 기본을 다졌다. 셰프를 거쳐 조선호텔 사업전략팀에서 일하던 중 호텔 F&B를 신세계푸드에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최 팀장은 동료직원들과 함께 신세계푸드로 자리를 옮겼다.
최 팀장은 "처음엔 한 끼에 수십만원 단위의 메뉴를 판매하는 호텔과 달리 몇천원 짜리 메뉴를 개발하려니 여간 지루한게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메뉴를 개발하다 보니 비싼 재료로 맛있게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메뉴개발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호텔에서는 일정 경력 이상의 셰프들이 직접 요리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맛과 품질이 달라지지만, 대중적인 외식사업에서는 누가 만들든 일정한 수준의 맛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후 지금까지 최 팀장은 신세계푸드에서 셰프시절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셰프 인생을 살아오며 몇 번의 전환점도 있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최 팀장은 이 행사에서 메뉴 뿐만 아니라 주방과 홀의 설계(lay-out), 인력운영·교육 계획 수립, 운영 총괄 등 전체적인 틀을 모두 기획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는 "메뉴명 하나부터 최종 결정까지 올림픽 조직위와 직접 소통하면서 진행했다. 최종 선정된 540여개의 메뉴를 팀원들과 함께 개발하고 메뉴 조리를 위한 600평 넘는 주방과 배식대 설계까지 도맡았다"며 "메뉴 구현을 위해 400여명의 인력 운영계획을 수립하고 조리교육, 서비스 교육까지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거듭해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고 당시 기억을 되짚었다.
이어 "특히 선수촌 식당은 24시간 계속 운영되는데 영하 20~30도에 육박하는 추위와 폭설에도 넓은 식당을 누비며 운영하느라 발이 얼어 불어틀 정도로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최 팀장의 노력을 지켜 본 토마스바흐 IOC위원장은 '지금까지 역대 올림픽 대회 중 유일하게 CDM(각국선수단장)회의에서 한 건의 컴플레인도 발생하지 않았던 최초의 대회'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셰프 인생을 정진해 온 최 팀장은 현재 메뉴개발팀에서 다양한 식물성 식재료를 활용한 대안식인 '유아왓유잇(You are What You Eat)'의 메뉴와 간편식을 개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지금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건강이다. 최 팀장은 "맛·위생·건강과 함께 지구환경까지 고려한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바이오 전문가와도 소통하며 몸에 좋고 면역력 등을 강화해주는 천연 물질도 공부하고 있으며 식품영양, 공학관련 서적이나 전문가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출·퇴근 시에도 관련 유튜브를 열심히 시청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렌드에 부합하는 '올바르고 반듯한' 음식을 개발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올해 신세계푸드 유아왓유잇의 '트러플 자장면', '분짜 샐러드' 출시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최 팀장은 "베러미트 대안육과 함께 쫄면을 주재료로 사용했는데, 일반적으로 웨스턴이나 오리엔탈 메뉴에서 사용하지 않는 재료를 활용해 개발했기 때문에 반대에도 많이 부딪혔다"면서 "자장면의 중화면과 분짜샐러드의 쌀국수 대신 쫄면을 사용해 새롭게 시도했는데 오히려 유아왓유잇 인기 메뉴에서 톱3에 꼽힐 정도로 매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며 뿌듯해했다.
유아왓유잇은 전 세계적으로도 성장 전망이 높고 신세계푸드에게도 가장 중요한 미래 먹거리 사업이기도 하다. 최 팀장은 "유아왓유잇을 통해서 소비자들이 식물성 대안식의 맛과 품질에 대해 긍정적인 경험을 쌓기를 바란다"며 "먹는 것을 통해 지구환경을 지키고 건강한 인류의 미래에도 일조할 수 있다는 메시지에도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중년의 셰프에겐 아직 이루고 싶은 큰 꿈이 있다. 생명을 살리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최 팀장은 "몸을 낫게 할 수 있는 질병별 맞춤형 치유식을 개발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어 그는 "최근 사찰음식에 관심이 있어서 어느 스님과 말씀을 나눴는데 치유식이라는 용어보다 '생명을 살리는 음식'이라는 표현을 쓰시는 것을 보고 꽤 감명을 받았다"며 "병에 걸리면 그에 맞는 처방을 받듯이 음식도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음식,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면서도 생명을 살리는 음식을 개발하는데 도전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붕어빵 한 마리 4000원?…미친 명동 물가에 유학생 경악
- "침착맨 떴다"…네이버 `치지직`, 최대 11만명 시청
- 과학이 찾아낸 가장 완벽한 턱선 미인은?…"너무 V여도 No"
- 여자 눈물 냄새만 맡았는데…"남자들 `이것` 줄어든다"
- 아랫층 화재에 0세, 2세 아이 안고 뛰어내린 부부...아빠는 숨져
- [트럼프 2기 시동]트럼프 파격 인사… 뉴스앵커 국방장관, 머스크 정부효율위 수장
- 거세지는 ‘얼죽신’ 돌풍… 서울 신축 품귀현상 심화
- 흘러내리는 은행 예·적금 금리… `리딩뱅크`도 가세
- 미국서 자리 굳힌 SK바이오팜, `뇌전증약` 아시아 공략 채비 마쳤다
- 한화, 군함 앞세워 세계 최대 `美 방산시장` 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