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준의 돈 이야기 <36>] 전기톱 대통령과 달러 머니
197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B급 공포영화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Texas Chainsaw Massacre)’은 제목의 선정성 덕분인지 오늘날까지도 불멸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는 지난 40여 년간 4편의 연작과 5편의 리메이크작이 만들어졌다. 특히 2003년 마이클 베이 감독이 연출한 리메이크작은 비평가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수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2023년 가을 그동안 극장에서만 볼 수 있던 전기톱이 선거 유세장에 등장하면서 전 세계의 황색 저널을 열광시켰다. 아르헨티나의 대선후보 하비에르 밀레이가 미화 100달러를 확대한 패널을 설치하고 전기톱으로 벤저민 프랭클린의 초상을 난도질하면서 ‘중앙은행 폭파’를 부르짖었던 것이다. 밀레이의 퍼포먼스는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고 경제난에 시달리던 유권자를 매혹시켰다. 2023년 11월 9일(이하 현지시각) 밀레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중앙은행 폭파하기
밀레이는 선거 기간 내내 정부 지출 삭감, 중앙은행 폭파, 페소화 폐기와 달러 사용, 중국·브라질과 무역 중단, 총기 자유화, 장기 매매 허용, 의료·교육 민영화, 낙태권 폐지, 동성 결혼 반대 등을 주장했고, 기후변화로 인한 글로벌 환경 위기를 사회주의자의 사기 행각이라고 비웃었다.
밀레이는 독신을 고수한 채 반려견을 금쪽이처럼 키우며 살고 있다. 밀레이는 반려견들을 루카스, 프리드먼, 로버트, 밀턴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반려견의 이름은 미국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로버트 루카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현대적 화폐제도하에서 중앙은행은 주권 국가 내부에서 유통되는 화폐의 원천이다. 중앙은행을 폐지한다는 것은 북한강 수계에서 소양강댐을 폭파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소양강댐을 폭파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수백만 개의 관정(우물)을 파놓거나 에비앙 생수 회사와 충분한 납품 계약을 체결해 놓아야 한다.
밀레이가 주장한 것처럼 중앙은행을 폐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남미 경제 동맹인 메르코수르를 유로존 수준의 통화 동맹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하지만 밀레이는 메르코수르의 맹주인 브라질과 교역 단절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니 이러한 방안을 실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아르헨티나가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되는 것인데 이것은 중요한 정치적, 법적 문제를 야기한다. 아르헨티나 헌법에 따라 의회의 동의와 국민투표를 거치더라도, 다시 미국 헌법에 따라 미 연방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미국인이 이 문제를 정체성 문제라고 생각할 경우, 미국 연방의회 3분의 2 찬성과 주의회 4분의 3 찬성이라는 험난한 정글을 통과해야 한다.
달러 사용하기
밀레이의 주장처럼 아르헨티나 페소화를 미국 달러로 대체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에 합병되지 않은 채 달러를 사용하는 것은 금광이 없는 나라가 금을 화폐로 사용하는 것과 같다. 아르헨티나는 상품 수출을 통해 달러(금)를 벌어들인 뒤 그 달러(금)를 자국 화폐로 사용해야 한다. 사실 1990년대에도 이와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아르헨티나의 경제 사정은 양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곡물을 팔아 많은 돈을 벌었고, 유럽의 이민자가 투자 자금을 가지고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가 경제적 난맥을 만들어냈다. 군사정부는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외 채무를 크게 늘렸다. 하지만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이 실패하자 아르헨티나는 빚더미에 나앉게 됐다. 이후 외화 부채를 끌어다 외화 부채를 갚는 돌려막기의 악순환이 시작됐다. 군사정부 말기 빈곤율과 실업률이 각각 40%와 18%로 치솟았다.
1983년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 라울 알폰신 민선 정부는 화폐개혁(구화폐 폐지, 신화폐 도입)을 단행해 경제를 일시적으로 안정시켰다. 하지만 군사정부 시절 늘어난 막대한 대외 부채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국가 경제가 마비되고 초인플레이션(화폐 가치가 폭락하며 물가가 계속 오르는 현상)이 발생했다.
1989년 페론주의(국수주의적 포퓰리즘)적인 카를로스 메넴 정부가 들어섰다. 1992년 도밍고 카바요 경제 장관 주도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아우스트랄(구화폐)과 페소(신화폐)를 1만 대 1로 바꾸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화폐단위 변경)을 실행했고, 페소화와 달러의 환율을 일대일로 고정했다. 그리고 페소화와 달러의 자유로운 태환(교환)을 허용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달러 태환성을 유지하기 위해 페소화 발행량과 달러 보유량의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했다. 즉 달러를 금본위제하의 금처럼 사용한 것이다. 정책이 성과를 거두면서 물가가 안정됐다. 하지만 누구나 값싼 수입품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달러가 해외로 유출됐다. 국내 산업은 약화했고 실업률은 상승했다.
개혁의 실패와 시스템의 붕괴
1995년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메넴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월스트리트의 자문을 얻어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공무원 급여를 삭감했고, 국영 석유 회사를 매각했다. 정부가 사용하는 각종 조달 물자와 서비스 지출을 대폭 줄이고, 정부 기구를 축소했다. IMF는 이러한 조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외화 대출금 상환을 연기해 줬다.
이후 해외 자본이 유입됐다. 조지 소로스는 오피스 빌딩, 쇼핑몰, 고급 호텔, 음식 체인점을 사들였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화려한 백화점을 인수했다. 포드(자동차), 나비스코(담배), 네슬레(식품) 등 대형 다국적 기업이 아르헨티나에 몰려들었다. 월마트(도소매)는 1년 만에 점포를 두 배로 늘렸고, 시티은행은 다수 현지 은행을 인수했다.
자유시장 혁명이 마냥 달콤한 것만은 아니었다. 안정된 직장을 보장받던 노동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업자가 됐고, 다국적 기업과 경쟁에서 패배한 많은 현지 기업이 도산했다. 1997년 경제성장률이 8%에 이르렀지만, 실업률은 14%로 확대됐다. 카를 마르크스가 말한 산업예비군(실업자)들이 시장혁명의 저수지 역할을 했던 것이다.
1999년 아르헨티나 최대 수출시장이던 브라질이 자국 통화(헤알)를 평가절하하자 아르헨티나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했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 신경제 열풍이 불자 달러 가치가 상승했고, 농산물 수출에 의존하던 아르헨티나는 불황에 빠져들었다. 경제 안정을 책임지던 고정환율제는 대외 경쟁력을 좀먹는 장애물이 됐다. 2001년 아르헨티나는 모라토리엄(대외 채무 지급 중단)을 선언했다.
적과의 동침
이후의 이야기는 최근 신문에서 보도된 바와 같다. 2001년 이후에만 세 번 국가부도가 났고, 전 국민의 40%가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대선 직전인 2023년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42.7%에 달했고, 시장 환율은 공식 환율(1달러=365페소)의 세 배(1달러=1000페소)에 달했다. 그리고 전기톱 후보가 당선됐다.
밀레이는 선거 기간 중 중국 정부를 ‘암살자’라고 부르며 중국 주도의 신흥경제국 모임인 브릭스(BRICS)에서 탈퇴하겠다고 말했고, 브라질 정부를 ‘사회주의자’라고 칭하며 브라질 정부가 주도하는 남미 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 탈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밀레이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태도를 바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감사를 표했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자신의 취임식에 초대했다. 브라질, 중국은 아르헨티나의 1, 2위 교역 상대국이다. 이들의 도움 없으면 중앙은행을 폭파할 수도 없고, 달러를 사용할 수도 없다. 생물학적 구조상 인간은 밥 대신 이념을 먹고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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