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돋보기] 레고와 부동산 모듈러 건축 시대의 도래
며칠 후면 연말을 알리는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장난감은 단연 ‘레고(LEGO)’다. 매년 약 200억 개의 레고 블록이 만들어지고, 초당 약 7개의 레고 세트가 팔린다는 이 장난감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가지고 놀고 수집하고 싶어 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라틴어로 레고는 ‘나는 조립한다’를 의미한다. 레고처럼 조립하는 모듈러 건축(Modular Building·공장에서 모듈 형태로 미리 제작한 다음 공사 현장에 설치·조립하는 건축공법)이 서서히 시장에 드러나고 있다. 지난 6월 용인 영덕에서 국내 최고층(13층) 모듈러 주택이 준공된 데 이어, 11월에는 전남 구례에서 국내 최초 모듈러 단독주택 타운형 단지(DL이앤씨 시공)가 준공되었다. 최근 국토교통부 장관에 내정된 박상우 전 LH 사장은 모듈러 건축 방식의 확산을 강조해 왔으며, 국토교통부는 모듈러 등 공업화 주택 공급 로드맵을 마련하여 시행할 계획이다.
모듈러 건축의 특징(L.E.G.O)
L(Less·절감) 모듈러 건축은 공장에서 사전에 제작된 모듈을 현장에 운반하여 조립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공정화된 생산 시스템을 적용하여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모듈 그대로 공사 현장으로 운반해 간단한 조립만으로 건축물을 완성하는 공법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습식 건설 방식보다 공사 기간이 30% 이상 단축되고, 규격화된 모듈의 대량 생산으로 규모의 경제 달성 시 공사 원가 절감이 가능하다. 아직은 산업 태동기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공사업 위주로 진행되지만, 향후 4차산업 및 스마트팩토리의 발전과 함께 모듈러 건축이 보편화될 경우 건설 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E(Eco·친환경) 국내 폐기물 발생량 중 건설폐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넘는다. 모듈러 건축은 모듈을 분리하여 재사용과 재활용이 가능함으로써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환경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또한, 현장 작업을 최소화하여 소음, 분진을 낮춰 인근 주민의 환경적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향후 기후변화 및 산업계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대응 그리고 환경을 중요시하는 미래 주 소비 계층인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가치 소비 측면에서도 모듈러 건축은 시대적 흐름이 될 수 있다.
G(Guard·안전) 모듈러 공법은 공정의 많은 부분이 안전시설이 완비된 스마트 공장에서 표준화된 생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짐으로써 안전과 품질을 모두 달성할 수 있다. 현장 작업이 최소화되면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줄 뿐만 아니라, 공사 기간도 단축되어 위험에 노출되는 시간도 감소한다. 최근 부실시공에 따른 아파트 건설 현장 붕괴 사고 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시공사로서도 중대 재해에 따른 경영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다. 또한, 무인 공정이 고도화될수록 기능 인력 고령화와 숙련 인력 부족 등으로 건설 산업이 겪고 있는 고질적 인력난도 해소될 수 있다.
O(Option·선택) 모듈러는 수요자 맞춤형 측면에서 획기적으로 개선된 공법이다. 예를 들어, 침실과 거실, 주방 등 고객이 원하는 유닛을 레고 블록처럼 선택하고 조립해 배치할 수 있다. 모듈 단위로 제작되기 때문에 건물의 크기와 형태를 쉽게 조정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모듈을 추가하거나 제거하여 공간을 확장하거나 축소할 수 있다. 또한, 모듈러 유닛을 해체하여 새로운 장소로 이동 후 재조립도 가능하여 보통의 건축물과는 다른 감가상각 방법을 적용해야 할 듯싶다.
모듈러 건축이 부동산 시장에 끼칠 영향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모듈러 건축이 뉴노멀이 된다면 건설(개발) 기간의 단축은 부동산 수급의 안정화를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개발 사이클을 보면 수요가 강한 상승장에 인허가 및 착공이 늘었다가 준공 시점에 하락장을 만나 수급 불일치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건설 기간이 단축되면 수급 불일치 기간이 짧아지면서 가격 변동성을 줄여 줄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어, 주택 공급이 부족한 도심지역이나 재건축지역에 신속한 주택 공급이 가능하게 되고, 공급 부족 장기화에 따른 가격 급등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공급자(사업 시행자·건설사) 입장에서는 공사비와 공기가 줄면서 공사 원가(인건비·금융비 등) 절감으로 사업성이 개선될 것이고, 공급가(분양가)를 낮추어 분양성을 더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모듈러 건축하에서는 건설업의 제조업화로 시공사의 책임준공 리스크가 줄고 건설 기간도 짧아지면서 개발 사업의 미준공 위험도 낮아질 것이다. 또한, 재사용·재활용이 가능한 모듈 유닛 자체가 하나의 상품화가 된다면, 제조업 기업인 현대차그룹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 것처럼 제작, 유통, 애프터서비스(A/S) 등의 가치사슬화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요자(소비자·투자자) 입장에서는 모듈 유닛을 선택, 조합하여 공급자 관점이 아닌 수요자의 니즈를 반영한 상품화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집합 건물이 아닌 단일 소유 부동산의 경우 재사용·재활용 특성으로 인해 모듈 유닛만의 거래가 가능함으로써, 건물 가치 훼손이 줄어듦에 따라 부동산 가치가 현재와는 다른 방식으로 평가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역 변화에 따른 표준적 이용이 바뀌면 손쉽게 용도 변경이 가능함에 따라 민첩하게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성숙 상권 지역에 주택 유닛으로 공간을 사용하다가 상권이 활성화될 무렵 상가 유닛으로 신속하게 대체하는 것이다. 공사 기간(무수익 기간)도 짧을 뿐만 아니라, 주택 유닛과 상가 유닛의 교환 개념으로 본다면 해체·설치 등의 공사비만 들 수 있다.
부동산 투자 시 유연한 사고를
부동산(不動産)은 토지나 집처럼 움직여서 옮길 수가 없는 재산이다. 그러나 모듈러 공법 등 기술 혁신으로 이제 건물은 이동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 왔던 건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꿀 때가 오는 것 같다. 건물은 원가법(재조달 원가에 감가 수정하여 대상 물건의 가액을 산정)으로 평가하고, 지으려면 오래 걸리고, 노후화되면 철거 후 폐기물이 되었다. 모듈러 건축이 뉴노멀이 되는 시대에는 건물도 거래사례비교법(동일성 또는 유사성 있는 물건의 거래 사례와 비교하여 산정)으로 평가할 수 있고,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단기간에 시공할 수 있고, 재사용·재활용으로 지속 가능한 이용을 할 수 있다.
아직은 레고의 듀플로(유아용) 단계이지만 엑스퍼트(성인용) 단계에 이르면 이 모든 변화를 피부로 느낄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메가 트렌드인 기후변화(친환경)와 자원 부족, 기술의 도약 속에서 모듈러 시대는 더 빨리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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