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의 경제 프리즘 <17>] 콘텐츠냐, 컨테이너냐? ‘쓴 약’ 같은 정책에 마케팅이 필요한 이유
#1│현재 전 세계 해상 물류의 대부분은 ‘컨테이너(container)’라는 대형 철재 상자에 실려 이뤄진다. 국제적으로 규격이 정해져 있어 세계의 어느 항구에서도 선적 준비 중인 컨테이너들은 높이 쌓을 수 있어 부두의 공간 활용에 최적이며, 전용 운송 트럭 이용으로 운송 효율도 아주 좋다. 이 컨테이너를 구상하고 발명한 이는 미국의 맬컴 매클레인(Malcolm Mclean)이다. 1937년 트럭을 몰며 운송업을 하던 그는 뉴저지주의 한 항구에 싣고 온 화물을 내리려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하루 종일을 날려 버렸다. 그때 문득 그에게 그 짐들을 대형 상자에 미리 실어 이 자체를 옮기면 크게 시간이 절약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결국 그는 1956년 이 금속 상자 즉 ‘컨테이너’를 만들어 특허를 받고 사업에 나섰다. 당시 이 컨테이너를 이용했더니 하역 작업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었다. 톤당 5.86달러(약 7705원)였던 비용이 16센트(약 210원)로 내려가면서 90%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2│오래전 필자는 제약 회사를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최신식 설비가 가동되는 와중에 작업자들이 한편에 수북이 쌓인 설탕 포대를 가져와 한 기계에 계속 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설탕으로 약에 옷을 입히는 ‘당의정(糖衣錠)’이라는 공정이었다. 이것도 미국이 발명한 것이다. 1856년 필라델피아의 약사인 윌리엄 워너(William Warner)가 설탕으로 약제를 코팅하는 이 기술을 개발해 다른 회사에 납품하다가 몇 년 뒤에는 직접 자기 이름을 상표로 만들어 팔기 시작해 큰돈을 벌었다. 당의정은 아무리 쓴 약도 쉽게 먹을 수 있게 만든다. 이 덕분에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속담이 무색해졌다.
#3│‘매독환주(買櫝還珠)’라는 사자성어는 한비자(韓非子)의 ‘외저설(外儲說)’에서 유래됐다. 초(楚)나라 사람이 나무 상자에 찬란한 장식을 해, 그 속에 값진 구슬을 넣어 정(鄭)나라 사람에게 팔았더니, 정나라 사람은 그 상자는 사고, 그 안의 구슬을 돌려줬다고 한다. 이는 화려한 겉모습에 속아 중요한 본질을 놓치는 바보짓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이 사자성어가 사람들이 ‘콘텐츠보다는 컨테이너에 더 끌린다’라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요즘 인터넷과 대학 교육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더욱 그렇다. 요즘 정부 정책은 그 2차, 3차 효과도 있어 이를 유권자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다반사인데, 온라인상에서는 이런 복잡한 설명은 잘 안 먹힌다. 대학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없는 네티즌들에게 감성에 호소하는 주장이 수용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 교육까지 받은 지성인인 자신(네티즌들)이 잘 이해할 수 없으면 이는 틀린 것이라는 숨은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요즘 현 정부와 정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초반에서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으며, 집권 여당의 지지율이 제1 야당과 거의 비등하거나 열세에 놓인 상태다. 이에 다음 총선에서 서울의 49개 선거구 중 여당이 우세한 지역이 단지 6곳이라는 여당의 내부 보고서가 흘러나와 파문이 일기도 했다. 차기 총선에서 ‘정권 심판’ 요구가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상당수 정치 평론가는 이 정부와 정권이 이런 곤경에 빠지게 된 이유 몇 가지를 들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 문제 등에 당당하게 우리 목소리를 내지 못했으며, 유죄 판결과 인사 개입 의혹 등 대통령의 친인척 관련 잡음이 적지 않다는 점, 대통령과 가까운 일부 인사들의 과도한 언행 등이 중도층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최근 여당이 자진해서 만든 ‘혁신위’의 제언을 당 수뇌부가 사실상 모두 거부한 점도 한 요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치 평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진한 경제 상황이다. 고물가와 고금리 여파로 집값 하락은 물론 소비 부진이 뒤따르면서 내수 경기가 깊은 불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지지층인 60대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권도 억울한 면이 많을 것이다. 지금의 부진한 경제 상황은 장기간의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 경기 부양을 위해 각국에서 엄청난 양의 돈을 풀었고, 이 돈과 팬데믹 종료 후의 ‘보복 소비’ 수요가 결합돼 급격한 물가 상승을 초래한 것에 기인하고 있어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와 농산물 가격 폭등도 가세했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앞다투어 금리 인상 등 통화 긴축에 나서면서 이제는 전 세계가 물가가 아니라 더 깊은 불황을 우려하는 상황이 됐다. 게다가 한국과 같은 중소 경제 국가들은 자국 통화가치의 방어를 위해서 미국 금리를 따라 올려야만 되는 상황에 처했고, 이는 불황의 늪을 더 깊게 만드는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대외적인 불가항력적 상황이 근본 원인인 것이다. 게다가 최저임금 증가, 근로시간 단축에다 27번의 안정책에도 폭등한 집값 등 전 정부의 아마추어적인 정책의 부작용과 후폭풍이 현 정부로 전가된 상태다. 포퓰리즘(populism·대중주의) 정책 남발로 폭증한 국가 부채에다 비대해진 행정 조직도 현 정권이 전 정권으로부터 떠안은 부담이다.
그러나 출범 이후 이 정부의 외교, 안보 분야에서 성과와 업적이 적지 않다. 특히 경제·외교 분야에서 대통령이 직접 발로 뛰어 중동 등 여러 국가의 초대형 국책 사업과 방산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의 참여 가능성을 크게 키운 것은 후한 점수를 받을 만하다. 거시 경제 및 재정 분야에서도 전 정부의 징벌적 부동산 세금을 낮춰 중산층 이상의 소비 여력을 다진 것과 전 정부에서 급격히 나빠진 재정 건전성을 챙기는 것은 후세를 위해서도 바람직해 보인다.
그런데 이 정부의 약점은 ‘마케팅’ 능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경영학에서 ‘마케팅’의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공통적으로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과 가치 있는 교환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제반 행위’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교환이 가능하게 하려면 고객과 소통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는 활동이 필수적이다. 이는 보통 ‘광고’나 ‘홍보’보다는 더 큰 개념이다. 정부 차원으로 올라가면 고객은 국민 전체가 되고 제품과 서비스는 정책과 그 성과가 된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이런 마케팅 노력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실에서 전 정부의 ‘국민소통수석’이 ‘홍보수석’으로 이름이 바뀐 것부터 많은 것을 시사한다. 또한 이는 전 정부에서는 ‘쇼통령’이라 불리 정도로 대통령부터 쇼맨십이 강했으며, 많은 잡음에도 한 관련 전문가를 청와대에 임기 내내 붙잡아 놓은 사실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대통령부터 좌고우면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정부도 퍼주기 정책을 지양하고 재정 건전성을 챙기며, 기업과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려는 모습은 모두 좋은 ‘콘텐츠’이지만, ‘쓴 약’인 경우가 많다. 이는 ‘당의정’이 필요하고 좋은 ‘컨테이너’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필자가 주제넘게 이 정부에 제언하자면 대통령실이나 총리실에 ‘정책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총괄할 부서부터 시급히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매독환주’의 시대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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