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미술관 산책 <5>] 인상주의 회화는 왜 풍요로운 모습을 담아냈을까
인상주의 미술은 미술사에서 가장 사랑받고, 인기 있는 미술 사조다. 이전의 사실적인 묘사와 균형미를 벗어나 빛과 색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우리에게 미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상주의 회화에서는 가난한 노동자의 모습이나 추한 어두운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다. 빛의 작가들이라고 명명된 이름처럼 빛과 색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지만, 미술적 원인을 제외하고, 왜 인상주의 회화의 소재는 풍요로울까.
미술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처음 미술사를 공부할 때 접하는 미술 교본서로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1909~2001)의 ‘서양미술사’와 아널드 하우저(Arnold Hau-ser·1892~1978)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있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에서 미술의 예술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사회의 영향보다는 미술 그 자체의 변화와 혁신 과정을 통한 미술 사조를 서술했다. 반면에 아널드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모든 예술 활동은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예술품은 그 시대의 정신과 사회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미술의 순수한 발전 과정에 중심을 둔 곰브리치의 미시적 견해와 사회적 영향으로 예술은 변화한다는 하우저의 거시적 관점이 다르듯이, 하나의 미술 사조가 탄생하는 데도 관점에 따라 원인을 다르게 볼 수 있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도시인의 눈으로 본 도시적 양식
1760년에서 1820년까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기술 혁신과 새로운 제조 공정으로 사회, 경제 등의 전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왕족과 귀족 중심의 지배 체제는 무너지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정치·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자유주의적인 경제 체제로 형성됐다. 이후 100여 년이 지난 19세기 중반에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이동했고, 도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소득 향상으로 생활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까지 향상되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미술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전의 귀족이나 지배계층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예술을 시민도 누리게 되었고, 도시는 역동적이며 활기찼다. 예술가들도 도시로 몰려들었고, 파리는 예술가들의 중심지가 됐다.
아널드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인상주의에 대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술했다. “기술 진보와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문화의 중심이 현대적 대도시로 발전해 가는 것으로 대도시는 새로운 예술이 뿌리내리는 토양을 형성하게 된다.” 그는 인상주의 미술에 대해, 세상을 도시인의 눈으로 보고 외부 세계의 인상에 반응했기 때문에 ‘도시적 양식’이라고 지칭했다. ‘도시적 양식’인 인상주의 미술 탄생의 결정적 배경은 증기기관의 발명이었다. 증기기관은 산업 분야에서 획기적인 생산력을 가져왔고, 동시에 시민에게 여행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도구였다. 제한적이었던 마차 시대 여행을 넘어, 기차는 새로운 여행 세계를 제공했다. 여행지에서의 경험은 예술가들에게 경이로운 경험을 제공했고, 인상주의자들이 야외의 빛을 연구하게 만든 하나의 계기가 됐다. 작가들은 그들이 본 경이로운 장면들을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 본 코끼리 바위 같은 신비로운 자연의 장면들, 산업혁명의 상징인 증기 열차, 거대한 현대식 다리, 인상 깊은 건축물 등은 인상파 화가의 단골 소재가 됐다.
산업혁명은 해외무역을 활발하게 했다. 이전과는 다른 생산성은 또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무역을 촉진시켰고, 그들은 일본으로부터 도자기를 수입했다. 일본 도자기는 당시 지배층의 기호품이 되었고, 도자기 포장지인 일본 채색 목판화는 기존 전통적인 회화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던 화가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것은 동양의 파격적인 생략법과 화려한 색채였다. 파격적인 생략법은 원근법과 명암법, 비례의 법칙에 익숙한 서양미술의 상투적인 화법에 충격을 줬다. “일본 채색 목판화는 유럽 회화의 기본적인 규칙을 과감하게 무시함으로써 인상주의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에서 이 같은 발언을 한 배경이다.
인상주의 회화는 사실주의의 사실을 버린다. 대상의 윤곽선은 뭉개지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감상해야 전체적인 그림이 제대로 보인다. 그리고 특정 부분을 의도적으로 생략해 원경으로 그리는 기법을 일본 채색 목판화에서 응용하게 된다. 이처럼 인상주의는 일본 채색 목판화의 생략적 구도와 화려한 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것이다. 인상주의 운동의 화가이며, 이론가인 리비에르는 “인상주의는 어떤 주제를 그 주제 자체가 아니라 색조를 위해 다룬다는 것, 이것이 인상주의자들과 다른 화가를 구별하는 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새로운 발명품들이 인상주의를 탄생시켜
인상주의 탄생을 가속화한 것은 19세기 중반 등장한 휴대용 카메라였다. 초기 사진술의 시대에는 초상용 사진을 찍으려면 고객은 몇 시간을 움직이지 못한 채로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인상주의 시기 휴대용 카메라와 스냅사진의 발전은 그림이 구현하지 못하는 다양한 각도와 공간의 연출로 이어졌다. 마침내 화가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무기가 등장한 것이다. 기술 발전이 기존의 직업군인 화가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순간이었다.
화가들은 생존을 위한 새로운 모색이 절실했으며 그 모색은 사진이 연출하지 못하는 다른 방향의 회화를 필요로 했다. 더 이상 사실적 재현의 그림은 사진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들이 생존하는 길은 완전히 다른, 그들만의 회화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야외에서 빛을 만났으며 마침내 이전의 회화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빛의 화가들’이 된 것이다.
이 무렵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도움을 주는 새로운 발명품이 등장하게 된다. 야외에서 빛이 주는 색감을 표현하려 할 때 휴대용 물감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튜브 물감이 개발됐다. 필요가 발명을 낳은 것이다.
산업혁명은 사람들을 도시로 모여들게 했고, 그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풍요로운 생활을 경험했다. 화가들은 이 풍요로운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쭉 뻗은 도시의 신작로, 길 위의 많은 상점과 시민, 증기를 내뿜는 기차와 정거장 등 그들이 표현한 것은 아름답고 풍요했다. 인상주의 미술에서 빈민이나 도시의 어두운 모습은 없다.
그리고 미술은 왕실이나 귀족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시민이 즐기는 대중적인 예술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인상주의 미술은 도시인의 눈으로 본 도시적 양식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시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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