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묵인' 수탁증권사까지 철퇴···사상 첫 형사처벌 가능성도
적발부터 증선위 의결 '일사천리'
수개월간 고의적 위반 행위 지속
당국 '솜방망이 처벌' 우려 불식
증선위 "전산시스템 구축도 박차"
금감원 전수조사···추가적발 주목
금융 당국의 글로벌 투자은행(IB) BNP파리바와 HSBC 등에 대한 제재 조치는 여러 측면에서 최초와 최대 수식어가 붙는다. 우선 과징금 부과 규모가 제도 도입 이후 최대다. 지금까지 증선위가 불법 공매도 혐의로 가장 많은 과징금을 매긴 사례는 지난 3월 ESK자산운용의 38억 7000만 원이다. 정부는 그동안 불법 공매도에 과태료만 부과했다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 여론이 들끓자 2021년 4월부터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공매도 주문액의 최대 10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50억 원을 넘는 사례가 없었다. 시장에서는 당국이 공매도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 당국은 BNP파리바 홍콩법인에 대해 11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BNP파리바는 2021년 9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카카오 등 101개 종목에 대해 부서 간 주식을 차입할 수 있는 구조를 악용해 400억 원가량을 무차입 공매도했다. 예를 들어, 고객으로부터 총수익스와프(TRS) 주문을 접수받고 사내 A 부서가 주식 100주를 소유한 상태에서 B 부서에 주식 50주를 대여하는 형태다. A 부서는 B 부서에 빌려준 내역을 입력하지 않고 기존 100주를 잔량으로 인식하고 B 부서는 빌린 주식 50주를 추가로 잡아 BNP파리바 홍콩법인이 150주를 갖고 있는 것으로 가장해 50주를 초과 매도하는 방식이다.
통상 과징금 산정은 주문금액을 기본으로 개별 건의 고의와 중과실 여부, 전체 거래 금액 대비 무차입 공매도 비중 등을 세세하게 따진 후 결정한다. 이번 조치는 무엇보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장기간 무차입 공매도를 지속한 고의성을 감안해 처벌 수위를 정했다는 설명이다. 증선위의 한 관계자는 “짧게는 4개월, 길게는 6~7개월 동안 불법 공매도를 지속했다는 것은 고의성이 있었다고밖에 판단할 수 없다”며 “엄정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당국은 공매도 주문을 넣은 주체가 아닌 주문을 받아 수행하는 수탁사에도 철퇴를 가했다. BNP파리바 홍콩법인의 주문을 지속적으로 수탁해 온 BNP파리바증권이 약 8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수탁사가 법적 제재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특히 BNP파리바증권의 과징금은 HSBC보다도 많다. 증선위의 한 관계자는 “수탁 증권사는 주문사의 공매도 포지션과 대차 내역을 매일 공유받고 결제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잔액 부족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는데도 원인 파악과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과징금 부과 배경을 설명했다.
HSBC 홍콩법인도 대규모 과징금을 피하지 못했다. HSBC는 2021년 8~12월 호텔신라 등 9개 종목에 대해 160억 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제출하면서 사전 차입이 확정된 수량이 아닌 향후 차입 가능한 물량을 기준으로 TRS 계약을 맺고 관련 위험회피(헤지) 주문을 냈다. 이후 최종 체결된 공매도 수량을 기초로 차입 계약을 사후 확정하는 수법을 썼다. 이들은 공매도 업무 처리 과정과 전산 시스템이 국내 규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후 차입 행위를 상당 기간 지속해 고의성이 짙다는 판정을 받았다.
금융 당국은 검찰 고발 조치도 처음으로 단행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무차입 공매도에 대해서는 1년 이상 유기징역 혹은 이익 금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현지 진출한 한국계 은행에 대해서도 수천 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모두가 알 만한 글로벌 IB에서 무차입 공매도를 장기간 해왔다는 것은 처벌 수위가 낮은 점을 알고 고의적으로 악용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은 앞으로도 불법 공매도에 대해서 고강도 검사와 제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현재 국내 공매도 거래 상위 글로벌 IB의 불법 공매도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6명의 팀 단위로 시작한 불법 공매도 조사 인력을 20명의 부서 단위로 확대한 만큼 추가 적발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흘러나온다. 앞서 금융 당국은 공매도 체계 전반을 개선하고 전산 시스템을 마련하고자 내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한 바 있다.
당국은 정치권과 논의해 공매도 관련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국회 정무위는 △상환기간·담보비율 일원화 △불법 공매도 차단 전산 시스템 구축 △불법 공매도 제재 강화 및 제재 수단 다양화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불법 공매도가 한 번이라도 적발되면 공매도 거래를 금지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와 위반 행위로 얻은 이익의 4~6배 벌금 등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불법 공매도에 대한 일반투자자들의 우려를 없앨 수 있도록 여러 제도 개선안을 들여다보는 한편 관련 전산 시스템 구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도 이번 기회에 불법 공매도를 뿌리 뽑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무차입 공매도는 한국뿐 아니라 대다수 국가에서 불법 행위인데도 국내 처벌 수위가 낮아 해외 금융사들이 금융 당국을 얕잡아 본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송이라 기자 elalala@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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