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트럼프를 다시 볼 당신을 위하여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례 없는 제재에도 러시아를 잡지 못하는 미국 패권의 현실을, 가자 전쟁은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의 위선적 측면을 드러냈다. 이에 더해 내년 11월5일이 지나면,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우리 눈앞에 다가올지 모른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새해는 미국이 주도하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인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유지할지를 가름하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밖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 중국과의 대결이라는 ‘외우’를, 안으로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내환’을 미국이 짊어지고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냉전 종식 이후 이라크 전쟁 등 주요 전쟁은 미국의 능동적 의지에 의해 진행됐는데,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은 미국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원치 않는 전쟁이다. 이 전쟁들은 3년 전인 2021년 1월6일 의사당 앞에서 시작된 ‘트럼프의 내란’을 완성시키는 배경이 될 수 있다.
새해에 3년차가 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피로감은 미국 안팎에서 커지고, 전황은 사실상 러시아의 점령지 굳히기로 들어갔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에 요청한 약 600억달러 우크라이나 원조안은 공화당이 국경통제 강화와 연계해 막혀 있고, 유럽연합의 500억유로 지원안도 헝가리의 반대로 묶였다. 우크라이나는 병참 부족 상황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50만 증병안을 제안했다.
전쟁이 터졌을 때도 우크라이나 병사의 평균 연령은 30~35살로 고령이었다. 현재는 43살까지 높아졌다. 50살 이상도 징집해야 하는 등 병력 자원이 바닥난 사면초가 상황이다. 러시아-독일을 잇는 노르트스트림 해저가스관 폭파 사건이 서방의 공작임을 최초로 폭로한 미국 탐사언론인 시모어 허시는 최근 협상설을 전했다. 그는 지난 2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한테 점령지를 포기하는 대신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하는 평화협상이 발레리 잘루지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 사이에서 논의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점령한 4개 주를 합병하는 대신에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병력 및 공격 무기를 배치하는 조건으로 나토 가입을 허용받는다는 내용이다.
주류 언론인 뉴욕타임스도 23일 러시아가 지난 9월부터 현재 전선에서 전투 동결하는 방식의 휴전안을 미국에 물밑 채널을 통해 타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쟁이 이제 러시아 주도의 협상 국면으로 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갈수록 가자 전쟁과 연동된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가장 우려하던 중동 역내로 번질 파장 때문이다. 국제 물류의 병목점인 홍해에서 예멘의 후티 반군인 ‘안사르 알라’는 이스라엘행 선박 공격에 나섰다. 미국은 다국적 연합 해상군 결성으로 이를 막는 ‘번영 수호자 작전’에 나섰으나,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과 그 동맹은 안사르 알라를 응징할 수 있겠으나, 일회성에 그칠 수밖에 없다. 가자 전쟁의 불똥이 홍해로까지 튈 수 있기 때문이다. 내전에서 사실상 승리한 안사르 알라는 이제 이란, 더 나아가 러시아와 중국을 배경으로 하여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바브엘만데브(바브알만다브) 해협에서 자신의 지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란 및 중·러의 이해이기도 하다. 러시아 제재로 중동의 가스를 수입해야 하는 유럽은 홍해 항로를 이용해야 한다.
가자 전쟁에는 비판이 드높다. 홍해에서 안사르 알라의 존재감은 가자 전쟁으로 국제사회에 비등한 반이스라엘 여론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이스라엘과 단교하는 국가 등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 공격을 중단하라는 국제 여론이 높으나, 미국은 이스라엘에 발목이 잡혀 있다. 정치헌금과 월가를 좌우하는 유대계 로비에 정치인들은 납작 엎드렸고, 대외정책의 고위 관리들도 대부분 유대계이거나 친이스라엘이다. 팔레스타인 주민을 동정하는 여론도 반유대주의로 몰아붙이는 신판 매카시즘이 극성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내에서는 전례 없이 이스라엘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덫에 걸린 상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최고강도 제재에도 러시아의 발목을 잡지 못하는 미국 패권의 현실을, 가자 전쟁은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의 위선적 측면을 드러냈다. 새해 들어 11월5일이 지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우리 눈앞에 다가올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선에서 승리해, 권좌에 복귀할 수 있다. 그는 지난여름 이후 바이든 대통령에게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에서 약 2%포인트 정도 앞서며, 12월4~18일 기준으로는 46.8% 대 44.5%(리얼클리어폴리틱스 집계)로 우위다. 2개의 전쟁이라는 외우와 트럼프라는 내환은 미국을 어디로 몰고 갈지, 그런 미국이 한국과 세계에 어떤 파장을 부를지는 당장 새해부터 국제질서에서 드러날 것이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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