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40여명 살해"… 간토 대지진 당시 학살 정황 日공문서 발견

차상엽 기자 2023. 12. 2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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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23년 일본 간토 대지진 당시 일본이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공문서가 일본에서 발견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진 발생 3일 후인 9월4일 일본 경찰이 보호하고 있던 조선인 200여명을 우라와 방면에서 후카가야, 혼조 경찰서까지 자동차로 호송했는데 낮에 이송하지 못한 조선인 40여명이 구마가야 각지에서 그날 밤 '군중에 모조리 살해됐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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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발생한 일본 간토 대지진 당시 일본이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공문서가 일본에서 발견됐다. 사진은 관련 내용이 담긴 공문서. /사진=재일한일역사자료관 공식 홈페이지
지난 1923년 일본 간토 대지진 당시 일본이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공문서가 일본에서 발견됐다.

25일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일본 공문서가 새롭게 발견됐다. 이는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정부 기록이 없다"는 입장을 관철해온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과 배치돼 일본 측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일본이 대외적인 발표와 달리 불법 학살을 인지하고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이번에 발견된 문서는 일본 육군성이 실시한 실태조사의 일부로 알려졌다. 해당 보고서에는 사이타마현 구마가야 시내에서 보호를 위해 경찰서로 이송 중인 조선인 40여명이 "살기를 품은 군중들에게 무참히 살해됐다"는 내용 등이 기록됐다.

이 문서는 최근 아사히신문 기자로 일했던 와타나베 노부유키가 방위성 방위연구소 사료실에서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문서에 대해 "이는 재향군인 관리 업무를 맡고 있던 구마가야 연대구 사령부가 육군성에 제출한 보고서"라며 "학살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입장의 관공서 보고서"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까지 발견된 적 없는 종류의 공문서"라고 밝혔다.

간토 대지진은 지난 1923년 9월1일 발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진 발생 3일 후인 9월4일 일본 경찰이 보호하고 있던 조선인 200여명을 우라와 방면에서 후카가야, 혼조 경찰서까지 자동차로 호송했는데 낮에 이송하지 못한 조선인 40여명이 구마가야 각지에서 그날 밤 '군중에 모조리 살해됐다'고 기록돼 있다.

사이타마현에서 발생한 조선인 학살은 대규모로 일어난 가나가와나 도쿄보다 늦게 발생했다. 사건 발생 후 50~60년이 지난 후 조사된 현지 결과에 따르면 최소 223명~240명이 희생됐다. 이 중 확인된 희생자 수는 최소 193명이다. 여기에 증언은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 수는 30명~47명 정도다. 이번에 발견된 보고서에 기술된 40여명은 이 중 일부로 추정된다.

와타나베 전 기자는 "알본인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조선인 학살을 저질렀을까"라며 "발생한 것은 분명하지만 집단적으로 정신이상을 일으켰다든지 권력에 의한 음모론적인 탄압이라든지 기존 견해로는 100년이 지나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관점을 해외나 전후 역사와 연결해 자료를 바탕으로 전모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해당 보고서는 일본 국립공문서관 아시아역사자료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열람할 수 있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차상엽 기자 torwar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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