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첨으로 대학 가는 입시, 과연 상상일까
‘슬픈 경쟁, 아픈 교실’ 시리즈
“대학 입시에서 추첨으로 대학을 배정하는 방식이 소설적 상상에만 해당하는 것일까요?”
“프랑스가 추첨으로 대학을 가는 대표적인 나라죠.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중·고교를 입시로 진학하다가 평준화로 바뀐 것처럼 그렇게 현실성이 없거나 상상에만 그칠 일은 아니죠.”
“우리 학생들이 배우는 필수 과목 중에서 선택과목으로 전환하거나 제외해도 되는 과목이 있을까요?”
“대학수학능력시험 보면 국어·영어·수학의 비중이 큰데, 이 3가지 과목의 공통된 특징이 있어요. 이들은 언어 과목입니다. 국어·영어는 인간사를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언어라면, 수학은 자연이라는 물질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언어죠. 즉 도구 학문입니다. 이런 학문은 기초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가 고도화되면 학자들을 위한 공부죠. 과거에 학자를 길러내기 위한 언어교육을 고등학생들이 ‘킬러문항’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제대로 이해하기보다는 풀기 위한 요령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 과목은 축소하고 우리 삶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과목과 교양 과목을 확대해서 아이들을 진정한 교양인으로 길러내는 교육을 해야죠.”
일견 교육 전문가들의 회의처럼 보이는 이 자리는 다름 아닌 소설가와 독자들의 만남이 이뤄진 자리였다. 지난 13일 밤 8시 온라인 줌 회의실에서 10여명의 독자들과 소설가 최영 작가가 만났다. 이들은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과 한겨레가 공동기획한 ‘슬픈 경쟁, 아픈 교실’ 미니 픽션 시리즈 중 최영 작가의 ‘대치골 허생전’을 읽은 뒤 한국 교육의 문제와 해법을 논의했다.
한겨레와 사걱세는 작가 10명과 손잡고 지난 8월 말부터 한국 교육의 현실을 소재로 짧은 소설을 격주로 한겨레 지면에 싣고 있다. 지금까지 총 9편의 작품이 연재됐으며, 각각은 한국 교육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통찰을 담고 있다. 이 중 ‘대치골 허생전’은 박지원의 ‘허생전’을 유머러스하게 오마주하는 형식으로 한국 입시경쟁의 원인과 해법에 직격탄을 날리는 작품이다.
이날 북토크 자리에서는 의대 쏠림 현상의 원인과 해법,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 시 성취수준 목표 등도 진지하게 다뤄졌다. 2시간에 걸친 북토크는 “교육을 바꿀 수 있는 제도와 답은 이미 다 있는데 그것을 바꾸지 못하는 우리가 있을 뿐이다” “소설들이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내용까지 담고 있어서 신선했다” “이 소설이 국어 시간 교재로 쓰이면 좋겠다” “이런 게 사회에 녹아들어서 교육도 바뀌고 사회도 바뀔 수 있으면 좋겠다” 등의 소감을 나누며 마무리됐다.
사걱세 요즘부모연구소는 ‘슬픈 경쟁, 아픈 교실’ 시리즈의 문제의식을 더 많은 시민들과 공유하고, 메시지를 확산하기 위해 ‘슬픈 경쟁, 아픈 교실’ 함께 읽기를 진행하고 있다. 사걱세는 온라인 북클럽 그믐(gmeum.com/meet/952)에서 참여 신청을 받아 현재 50여명의 시민들이 온라인에서 미니 픽션들을 한편씩 같이 읽으면서 댓글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참여 독자들은 학부모나 교사가 많은 편이다.
지난 15일부터 지금까지 장강명의 ‘킬러문항 킬러킬러’, 정진영의 ‘덜 싸우고 덜 상처받는 전략’, 주원규의 ‘한 바퀴만 더’, 한은형의 ‘강 선생 이야기 들었어?’, 최영의 ‘대치골 허생전’, 정은아의 ‘그날 아침 나는 왜 만원짜리들 앞에 서 있었는가’, 지영의 ’민수의 손을 잡아요’ 등을 읽었으며 앞으로도 연재된 작품 순서대로 읽어나갈 예정이다. 또 이 중 장강명 작가와 최영 작가와는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진 데 이어 내년 1월16일에는 서유미 작가와의 만남을 가질 계획이다.
사걱세 김은종 사업국장은 “2028 대입 개편 시안 발표로 교육계가 술렁였던 하반기였고 조만간 시안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반향이 다시 커질 듯하다”며 “그간 올해 대입 개편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논의가 있어 왔는데 이 함께 읽기의 과정 또한 그러한 공론의 장으로서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는 또 “입시경쟁의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내고 있는 10편의 소설을 하나씩 곱씹으면서 지금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2028년 대입 개편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할지 시민들이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며 “10편의 미니 픽션이 시민들 속에서 우리 교육에 대한 더 큰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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