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교사, 민주적 학교···그러나 지옥이 된 교실[리뷰]
민주적 교육현장의 악몽 표현
훌륭한 선생님만 있다면 교실은 천국일 수 있을까. 교육 현장을 다룬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89) 안에서 이 명제는 참이다. 사회와 학교의 억압은 훌륭한 스승 키팅(로빈 윌리엄스)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제자들은 이상적인 어른으로 성장한다.
독일 영화 <티처스 라운지>의 주인공 카를라(레오니 베네슈)도 키팅 못지않게 괜찮은 교사다.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맡은 그는 학생들을 진심으로 아낀다. 때론 엄하게, 때론 부드럽게 지도하며 아이들을 바른길로 이끌기 위해 애쓴다. 이런 카를라의 노력 덕분인지 교실은 대체로 평화롭다. 커닝을 하다 걸리거나 수업 중 몰래 나가는 아이들이 있긴 해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연쇄 도난 사건이 일어난다. 카를라의 교실에서 시작된 도난은 교무실로도 이어진다. 훌륭한 교사인 카를라는 사건을 직접 해결해보려 한다. 하지만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하려던 카를라의 스텝은 꼬이고 만다. 학교는 혼란에 휩싸인다.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동료 교사들까지 카를라에게 등을 돌린다. 카를라를 무엇보다 괴롭히는 것은 그와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했던 모범생 오스카다. 오스카는 카를라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교실 안 권력관계는 완전히 뒤바뀐다.
역설적인 것은 <티처스 라운지> 속 2020년대 학교가 무척 민주적이라는 점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학생의 참여가 보장되고, 학내 언론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누린다. 학부모는 자녀의 교육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다. 각종 차별이나 폭력에 대한 사회의 감각도 <죽은 시인의 사회>의 배경인 195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이 예민해졌다.
<티처스 라운지>가 보여주는 폭력과 억압은 은밀하고 절차적으로 정당하다. 가짜뉴스는 표현의 자유를 타고 교내에 퍼진다. 학부모의 열성적인 개입은 카를라를 문자·전화 지옥에 가둔다. 누구 하나 특별히 악하거나 불합리한 주장을 펼치는 것도 아니다. 카를라는 좋은 선생님이며 오스카도 좋은 학생이다. 그렇지만 좋은 의도가 충돌하는 순간 학교는 지옥이 된다.
카메라는 러닝타임 내내 학교 건물 안에서만 머물며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학교의 공기를 집요하게 좇는다. 영화가 포착한 2020년대 독일 학교의 현실은 한국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지난여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한 초등교사의 사망 사건은 민주적으로 보이는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티처스 라운지>에서 참인 명제는 훌륭한 교사만으로 교실을 천국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뿐이다.
독일의 가장 권위 있는 영화상인 독일영화시상식에서 최고작품상과 시나리오상, 편집상, 감독상, 여우주연상까지 5관왕을 차지한 작품이다. 내년 3월 열릴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도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27일 개봉. 러닝타임 99분.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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