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베스트셀러보다는 올해의 책 어때요?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12. 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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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트리가 반짝이고, 캐럴이 울린다.

베스트셀러와 '올해의 책'을 통해 마음의 양식을 적립할 좋은 시기다.

그런데 1위 책이 팔아도 몇백 원 남기기 어려운 6500원이었으니, 올해 서점들 장사는 공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겨울엔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베스트셀러를 사지 말고 '올해의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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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트리가 반짝이고, 캐럴이 울린다. 서점에서 겨울은 추수의 계절이다. 베스트셀러와 '올해의 책'을 통해 마음의 양식을 적립할 좋은 시기다. 출판기자로 10년을 일했지만 고백하자면 베스트셀러를 읽어본 일이 '거의' 없다. 베스트셀러는 좋은 책이라기보다는, 많이 팔린 책이어서다.

올해 베스트셀러 1위를 독식한 '세이노의 가르침'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베스트셀러 장사는 서점의 한 해 농사를 좌우한다. 그런데 1위 책이 팔아도 몇백 원 남기기 어려운 6500원이었으니, 올해 서점들 장사는 공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세태도 읽힌다. 1000억원 자산가가 하는 '독설'을 70만명이 읽는 사회라니. 그야말로 불황기의 전형이 아닌가.

올겨울엔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베스트셀러를 사지 말고 '올해의 책'을 읽자. 여러 신문에서 가장 많이 뽑은 책은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이다. '집중력 도둑'인 스마트폰이 마약만큼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책이다. 3개월 동안 시골로 도망간 저자조차 이 '요물'과의 이별에 실패했다. 스마트폰 중독자는 머리까지 나빠진다는 과학적인 근거도 든다. 맹모 뺨치는 한국 학부모들이 열광한 이유가 여기에 있나 싶다. 인문서이지만 무엇보다 재미도 있다.

교보문고는 소설가 50명이 첫손에 꼽은 '작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도 발표했다. 1위인 권여선의 '각각의 계절'에 실린 '사슴벌레식 문답'은 가히 올해의 단편 소설이다. 30년 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대학 신입생들이 낯선 공간에 던져진 새끼 오리들처럼 하숙집에 모여 살던 추억을 되짚는 이야기다. 사소한 오해로 친구들은 멀어진다. 주인공은 30년이 지난 뒤에야 파국을 부른 여행의 진실을 알게 된다.

"너는 왜 연극이 하고 싶어?" "나는 왜든 연극이 하고 싶어." "너는 어떤 소설을 쓸 거야?" "나는 어떤 소설이든 쓸 거야." 의미 없는 선문답 같은 대화에 '의젓한 사슴벌레식 문답'이라고 친구들은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당시엔 마음속 진실을 꺼내놓지 못했을 뿐이었다. 뒤집힌 채 바둥거리며 빙빙 도는 구슬픈 사슴벌레의 모습은 살짝 괄호에 넣어두고, 그들은 저 흐르는 강처럼 의연한 사슴벌레의 말투만을 물려받았던 것이다. 이 의연한 말투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이 이야기의 가치는 충분하다. 소설은 실패를 배우는 도구다. 올해의 실수는 잊고, 앞으로 나아가기에 사슴벌레식 문답은 도움을 준다. 고맙게도 12월 31일은 망각을 위해 주어진 선물이 아니던가.

[김슬기 문화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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