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에서 뜻밖에 만난 테너 리치트라의 자취[유윤종의 클래식感]
이탈리아 남부, 제주도의 열네 배 크기 섬인 시칠리아 제2의 도시인 카타니아를 찾았다. 산간도로를 내려오면서 펼쳐지는 도시의 수려한 풍경과 환한 햇살은 겨울을 완전히 잊게 했다. 시칠리아가 무대인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주요 선율을 줄곧 입으로 흥얼거렸다.
가이드가 추천한 식당 ‘카노니카’에서 현지 스타일의 식사를 주문했다. 큰 테이블을 차지한 동양인들이 신기했던지 지배인이 말을 걸었다. “무슨 일로 이 도시에 오셨습니까?” “우리는 한국의 음악 애호가들입니다. 카타니아에서 태어난 작곡가 벨리니의 자취도 만나보고, 오페라도 보고, 시칠리아의 다른 명소들도 구경할 예정이죠.” “아, 그래요?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 아십니까?” “리치트라요?”
귀가 번쩍 뜨였다. 그때도 겨울, 2003년 12월이었다. 리치트라와 서울 서초동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단둘은 아니고, 그가 첫 내한 리사이틀을 막 마친 뒤의 저녁 뒤풀이였다. 서른다섯 살의 시칠리아인은 유쾌한 수다쟁이였다. 끊임없이 음식에 대해 탄복했고, 공연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했으며 그날 배운 한국어를 복습하며 좌중의 웃음을 유발했다.
“모든 게 즐거웠어요. 부디 한국에 자주 오세요.” 내가 건넨 인사처럼 곧 다시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우리 식당에 있는 친구가 리치트라의 간을 갖고 있어요. 포르투나토, 이리 와봐! 리치트라의 친구가 한국에서 왔어!” 지배인의 말이 옛 기억에서 나를 깨웠다. “리치트라의 간이라고요?”
리치트라는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불꽃처럼 타오른 뒤 사라졌다. 2002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푸치니 ‘토스카’의 남주인공 카바라도시로 출연할 예정이었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독감에 걸려 개막 두 시간 전에 공연을 취소했다. 백업 가수(주역 가수의 이상에 대비해 같은 역을 연습하는 가수)였던 리치트라가 긴급 투입됐다.
그날 리치트라는 1막의 테너 아리아 ‘오묘한 조화’를 부른 뒤 43초 동안 박수를 받았다. 3막의 ‘별은 빛나건만’에서는 46초 동안 박수가 이어졌다. 뉴욕 언론은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를 잇는 네 번째 테너를 기대한다면 리치트라는 그게 될 수 있다’고 썼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와 배역에 몰입하는 호소력 있는 음성 연기를 펼쳤던 리치트라는 이후 전 세계 성악팬들을 매료시켰다.
그 불꽃의 빛은 밝지만 짧았다. 2011년 리치트라는 부모의 고향인 시칠리아에서 스쿠터를 타고 가다 벽과 충돌하는 사고를 일으켰고 9일 동안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팬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났다. ‘구원자(Salvatore)’라는 이름을 가졌던 리치트라는 간 질환으로 사경을 헤매던 ‘운 좋은 사람(Fortunato)’ 포르투나토 씨에게 새 생명을 주었다.
지배인의 부름에 포르투나토 씨가 왔다. ‘상남자’ 인상의 리치트라와 달리 가늘고 상냥한 인상이었다. 그가 들고 온 스크랩북에는 ‘오페라 스타가 이 남자에게 간을 선물하고 떠났다’는 제목의 기사와 방송 화면 캡처 사진들이 있었다. “지금도 리치트라의 부모님이 자주 전화로 제 안부를 물어요. ‘네가 잘 있으면 우리 아들이 잘 있다고 믿는다’고요.” 내가 “리치트라와 서울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고 했더니 지배인은 공짜 디저트를 수없이 내왔다.
7년이 흘렀다. 1월 16일부터 23일까지 다시 시칠리아를 찾아간다. 리치트라가 세상을 떠난 곳이자 대작곡가 빈첸초 벨리니의 고향인 카타니아에서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 전통을 돌아보고, 시칠리아의 그리스 문화 중심지 시라쿠사와 아그리젠토, 영화 ‘시네마 천국’ 무대 체팔루, 시칠리아의 주도이자 문화 중심지 팔레르모 등 섬 곳곳을 돌아본다.
영화 ‘대부 III’ 무대인 팔레르모의 마시모 극장에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를 관람하고, 카타니아의 마시모 벨리니 극장에서는 내년 서거 100주년을 맞는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를 현대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의 새 완성본 악보로 만나본다. 포르투나토 씨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함께하실 분은 인터넷 초록 검색창에서 ‘투어동아’를 쳐 보시기를.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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