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1 인터뷰] '수석, 또 수석'… 대구 B팀 3부 올린 '광인' 정선호 코치, "매일을 동계처럼!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조남기 기자 2023. 12. 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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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대구)

대구 FC 정선호 코치를 만났다. 정선호 코치는 대구 B팀을 최초로 K3리그(3부리그)에 올리는 결과를 남겼다. 본인은 무덤덤하게 반응하지만 외부에서 봤을 땐 분명 주목할 만한 결과다.

대구 B팀은 2023시즌 K4리그(4부리그)를 2위로 마쳤다. K4리그에서는 정규리그 2위까지 3부리그에 자동 승격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B팀을 K4리그에 참가하도록 허가한 이래, B팀이 3부리그에 올라선 건 대구 B팀이 '처음'이다. 덕분에 시즌 내내 B팀과 동고동락한 정선호 코치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34세 정선호 코치는 선수 커리어를 예상보다 빠르게 정리하고 지휘관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구의 부름을 받아 2022년부터 새 삶을 살고 있다. 선택은 최고의 나날을 끌어왔다. 정선호 코치는 대구라는 최고의 환경에서 '고속 성장'하는 중이다. 조광래 대구 대표이사나 최원권 대구 감독 같은 훌륭한 선배 지도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 덕분에 최근 지도자 라이선스 B와 A코스에서 연속으로 '수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제 막 지휘관으로 첫 발을 뗀 정선호 코치, 그로부터 대구 B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선호 코치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평소 생각하는 것들을 가감 없이 말해줬다.
 

b11: 대구 B팀을 3부리그로 이끌었습니다!

"처음엔 성적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승을 해서 승격을 해야겠다, 이런 거창한 생각은 안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선수들을 1군에 보낼 수 있을까, 이 선수들이 어떻게 하면 1군에 도움이 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한 경기 한 경기 하다 보니까 또 이기고 싶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팀이 발전하는 걸 느꼈습니다. (K4리그에서 K3리그로 승격이 확정됐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지도자로 가야 할 길이 100%라면 이제 1% 정도 채운? 그래서 무덤덤했습니다. 일부러 감정을 자제하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아이들이 증명을 했구나' 그런 생각이 더 앞섰던 거 같습니다. 승격의 기쁨은 딱히 없었던 같습니다."

b11: 승격이 별 감정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이었나 봐요.

"그냥 애들에게 고마울 뿐이었어요. 열심히 해줬구나. 그걸 이렇게 표현을 해줬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승격의 결과로 기분이 좋았다, 이건 없었어요. 승격도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거지, 크게 의미가 있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b11: 내년에도 3부리그의 대구 B팀을 지도할 듯한데, 그러면 한 단계 높은 레벨인 만큼 더 강한 도전의식이 생길까요?

"K3리그라서 도전의식이 생기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선수들에게 하는 말이 이거거든요. '너희들은 K리그1 선수다.' 어리지만 K리그1 선수입니다. 그러니까 더 증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K3리그에서도 꼭 증명해야죠. 다른 K리그1의 B팀과 비교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이고, 대구는 대구의 할 일을 하는 것. 잊지 말아야 할 건 우리 아이들이 K리그1 선수로 대구에 왔지, K3리그에서 뛰려고 온 건 아니라는 겁니다."

b11: 지도할 때는 어떤 스타일인지 궁금합니다.

"운동장에서 진짜 엄청 뭐라고 해요. 진짜로 막 소리를 질러요. 하지만 운동장에서 나오면 딱 10초 만에 화가 없어져요. 그래서 선수들에게도 한번 물어봤어요. '내가 너무 뭐라고 하는 거 같니'라고 하니까 애들이 '축구에서만 뭐라고 하는 거면 괜찮아요'라고 답하더라고요. 전 딱 축구에서만 이야기해요. 전술에서 뭔가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을 때 딱 그것만. 감사하게도 선수들이 제가 발전을 도우려고 한다는 걸 느낀다고 하네요. 선수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b11: 선수들이 납득하는 지도자가 되는 게 쉽지 않은 거 같아요.

"끊임없이 배워야 좋은 지도자가 될 거 같아요. '팩트'에 기반한 지도자도 중요합니다. 요새는 지도자가 선수를 평가하는 걸 넘어 선수가 지도자를 평가하는 시대인 거 같아요. 만일 선수들이 우리 감독이 능력이 없다, 이렇게 판단을 해버리면 각자의 축구를 해버려요. 그러니 앞으로의 지도자들은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춰야 해요. 더 똑똑해져야 해요. 우리 최원권 감독님처럼 진짜 똑똑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선수들도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저는 선수들도 충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좋은 지도자만 나타난다고 해결되진 않습니다. 선수들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죠. 지도자도, 선수도, 계속해서 발전을 요구하는 상황. 축구에 그런 시대가 올 거라고 봅니다."

b11: 올해 개인 스케줄은 어떻게 보내는 편이었나요?

"일단 아침에 축구를 보면서 런닝합니다. 그리고 아침 먹고 B팀 훈련 갑니다. 훈련하고 점심 먹고, 오후엔 A팀 훈련에 가요. 그 다음에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아기랑 놀아주기. 아기 씻기고, 샤워하고 설거지하면 8시 반 정도 돼요. 이제 와이프랑 아기가 자러 들어가면 다시 집을 나와 대구 숙소로 가요. 숙소에서 영상을 보고 우리애들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생각하고 방으로 불러서 이야기를 나눠요. 그러다가 자고 일어나서 다시 런닝을 뛰어요. 주로 클럽하우스에 있고 집에는 약간 출근하듯 가는 거 같네요. 그러다 보니까 딸이 나가는 제게 인사할 때 손님에게 다음에 또 오라고 말하듯 '안녕히가세요' 그래요(웃음)."

b11: 주로 클럽하우스에 머무니까 선수들과 소통하기는 엄청 용이할 거 같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얘기하죠. 방으로 부르거나, 아니면 제가 방으로 가거나. 방으로 가도 좋아요. 뭐하나 구경도 하고. 자연스럽게 얘기도 하고. 근데 또 애들 방에 가면 다들 축구 보고 있어요. 저는 같이 그걸 보려고 앉죠. 보면서 축구 얘기하고. 이게 또 직업상 제가 자꾸 경기 스톱을 시키더라고요.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 한마디씩 거들면서. 애들이 처음에는 재밌어했는데 나중엔 약간 지루한 티도 내요. 그러면 슬슬 다 나가요. 그러면 옆방에 가서 다시…. 축구 얘기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이걸 좀 줄여야 하는데…."
 

b11: 진짜 삶을 축구로 꽉꽉 채운 느낌입니다.

"사람도 축구하는 동료들 빼고는 거의 안 만나는 거 같아요. 와이프가 처음엔 싫어했어요. 다른 친구 좀 만나라는 거예요. 물론 다른 친구도 있긴 하죠. 그런데 전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 와이프가 된 여자친구, 가족, 그리고 축구 밖에 없었어요. 이렇게 하나에 집중하는 삶이 오히려 재밌지 않나요?"

b11: B팀을 이끌며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엔 고민도 많이 됐을 거 같아요.

"편견을 가지면 안 돼요. 어떤 선수들을 교체할 때도 제가 편견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평소에 주변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들으려고 해요. 선수들은 처음엔 제 말이 맞다고 하지만, 나중엔 이제 의견을 내서 딱 얘기해줄 때도 있어요. 선수들뿐만 아니라 트레이너 분, 팀 매니저 분, 스카우터 분 등 모든 분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거든요. 귀를 열어야 합니다. 제가 마음대로 하면 무조건 산으로 간다고 생각합니다."

b11: 요새 지도자로 어떤 생각을 많이 하나요?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나는 운이 진짜 좋다. 무척 어린 나이에 우리 감독님이 불러주셔서 지도자를 시작하게 됐고, 어쩌다가 B팀을 맡았는데 감독님이 마음대로 해보라고 지원도 해주세요. 정말 행복한 상황이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을 동계 전지훈련처럼 보내요. 하루에 두 탕씩 하는 게 사실 힘들 수 있어요. 근데 덜 힘들다고 생각하게 돼요. 진심으로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잖아요. 이 상황을 어떻게든 내 걸로 만들어야 하니까, 나에게 도움이 되게끔 만들어야 하니까, 그래서 힘들기보다는 감사하다고만 생각했어요."

b11: 조광래 대구 대표님도 B팀 경기를 자주 보러오시나요?

"올 초에는 홈경기에 보러 오셨어요. 영상으로도 자주 보시는 거 같아요. K4리그가 유튜브로 나오잖아요. 아무래도 항상 체크는 하고 계시는 거 같습니다. 마지막 전북 현대 B팀전 끝나고 나서는 전화로 '잘 봤다. 잘했다'라고 말해주시더라고요. 그날은 전북이 외국인 선수 3명을 뛰게 했어요. 페트라섹·안드레 루이스·하파 실바가 나왔어요. 그럼에도 우리의 경기력이 좋았습니다. (대표님이 조언도 많이 해주시나요?) 일단 '힘들지'라고 많이 물어봐주시고요(웃음). 가끔씩 방에 부르셔서 '이것도 한번 생각해 봐라' 이렇게 말을 해주세요. 최원권 감독님도 조언을 많이 해주세요. '어떻게 해라' 보다는 힌트로 유도를 많이 해주시는 거 같습니다. 2023년은 감독님이 무슨 말을 하면 그게 어떤 뜻이 있을까, 엄청 고민을 했어요."

b11: 앞으로 대구 B팀은 어떻게 흘러가면 좋을까요?

"B팀은 그렇게 돼야만 합니다. A팀에서 쓸 수 있는 선수들이 만들어지는 공간. 감독님이 쓰는 선수들을 만들어야겠죠. 내년에는 그걸 조금 더 해봐야 할 거 같아요. 올해는 그런 면에서 부족했습니다. 감독님의 니즈를 채워야 했는데, 그걸 확실하게 채우진 못했어요. 눈높이를 더 맞춰보겠습니다. 내년에도 성적보다는 선수들의 성장과 콜업이 더 큰 목표라고 볼 수 있겠네요. 사실 프로에 입단하면 그때부터 시작이에요. 프로에 왔다고 성공? 절대 아닙니다. 상상과 달라요. 편하게 운동할 줄 알았겠지만 매일이 경쟁입니다. 살아남아서 A팀으로 올라가야죠."

"선수들은 열심히 했지만, 승격도 했지만, 분명 A팀에서 뛰기엔 부족함이 있었을 거예요. 결국 A팀의 니즈를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저도, 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족했어요. 제가 더 잘해야 합니다. 선수들도 더 잘해야 하고요."

b11: 1989년생으로 34세. 지도자로서 굉장히 젊은 나이입니다. 프로 커리어를 빠르게 접은 이유도 있었나요?

"많이 아팠어요. 일단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연골이 찢어진 상태였어요. 6학년 때 재활에만 8개월을 쏟았어요. 수술을 해야 하는데 못했어요. 수술하면 키가 안 클 수도 있다고 하니까…. 그래서 아픈 채로 축구를 계속했던 거 같아요. 대학교에서도, 프로에서도, 상주 상무 가서도, 참고 했어요. 결국 상무에서 십자인대랑 슬개연골이랑 다 터졌어요. 지금도 무릎에 힘을 주면 많이 피질 못해요. 그러다가 족저근막염도 왔고, 그게 또 터지고…. 심적으로 지치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최원권 감독님이 연락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결정하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도자를 하고 싶었어요. 선수 시절 내내 좋은 감독님들을 만나면서 지도자가 멋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최원권 감독님으로부터도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저렇게 똑똑해야 지도자를 할 수 있구나!'"

b11: 지도자 자격증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땄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수석'도 두 번 했다고 들었어요.

"선수하면서 딴 건 C 라이선스 밖에 없었어요. 그런 저를 감독님이 불러주셨어요. 자격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격이 중요한 거라는 명언을 남기시면서. 대구에서 지도자를 하며 바로 B 코스에 들어갔어요. 어떻게든 배워서 살아남아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수석을 했어요. 덕분에 바로 A 코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올해 A 코스에 또 들어갔는데 또 수석을 하게 됐어요. 이제 다음에 P 코스에 들어갈 때 가산점이 있을 거예요. (A와 B 모두 수석이라니, 비결이 있나요?) 비결은 없는 거 같아요. 그냥 열심히 했습니다. 감독님께 잘 배웠고, 그대로 하니까 잘 됐습니다."

b11: 선수들에게 '정선호 코치 어때요?' 이렇게 물어보면 어떤 대답이 돌아오면 좋을 거 같아요?

"돌+아이 같다. 축구에 미쳐 있는 사람 같다. 축구를 무척 좋아하는 선생님인 거 같다."

글=조남기 기자(jonamu@soccerbest11.co.kr)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대구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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