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일방적’ 이승만 띄우기…과오는 외면한 채 공적만 부각
국방부, 정신교육 교재에 15번 등장
부정선거 등 과오 외면…우려 제기
윤석열 정부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과오는 외면한 채 공적만 치켜세우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이 전 대통령을 2024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국방부는 장병 정신전력 교재에서 이 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선도했다”고 밝히면서, 부정선거와 4·19혁명으로 하야한 사실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의 ‘이승만 띄우기’가 지나치게 이념 편향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훈부는 25일 ‘세계 속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선정한 2024년 1~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총 38명을 공개했는데 그 중 1월의 독립운동가로 이 전 대통령이 선정됐다. 보훈부는 “이승만은 1919년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했고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으로서 한인 자유대회 개최와 한미협회 설립 등의 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2~12월에는 각각 3명 이상의 독립운동가가 선정됐고 1월에만 이 전 대통령이 단독으로 명단에 올랐다.
이 전 대통령을 ‘국가 영웅’으로 기리는 작업은 윤석열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3·1절 기념식 배경으로 안중근·김구·안창호·유관순·윤봉길 선생 등 독립운동가 11명의 얼굴이 현수막에 담기자 여권에서 이 전 대통령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박민식 당시 보훈처장(현 보훈부 장관)은 “3·1절 행사는 행정안전부 소관이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빠진 건 솔직히 아쉽다”며 “훈격으로 보나,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위상으로 보나 독립운동에서 이 대통령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하와이·미국을 기반으로 한 이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 경력 자체에 대한 이견은 많지 않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를 했다는 것은 또 다른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독립운동과 민주주의의 퇴행은 다르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과가 뚜렷한 인물을 두고 정부가 이 전 대통령의 업적만 강조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점증하고 있다. 1948년부터 1~3대 대통령으로 집권한 그는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를 했고 4·19 혁명으로 1960년 하야했다. 공적을 기린다는 명분으로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인 정부가 그를 ‘건국 대통령’으로 추앙하면서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못 박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경우 1919년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주도한 임시정부 활동의 의미가 축소된다.
이 전 대통령은 반공주의 색채가 강한 인물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그를 기리는 것이 홍범도 장군의 사례와 대비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는 홍 장군이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공을 세우는 등 독립운동 공적은 인정한다면서도 그의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을 문제 삼아 육군사관학교(육사) 교정에서 흉상을 철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공산당에 가입한 것을 현재 이념의 잣대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박 장관은 반년간 수행한 장관직을 오는 26일부로 내려놓고 제22대 총선을 준비한다. 박 장관은 지난 20일 이임 인사차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소관 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지, 장관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위원의) 대부분은 교수님들이고 광복회도 참여한다”고 말했다. 보훈부와 광복회, 독립기념관, 근현대사 전공학자 등으로 구성된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위원회’가 매달 독립운동가를 선정한다.
국방부는 새롭게 발간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서도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공적만 나열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안규백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이 교재에서 이 전 대통령의 이름이 15차례에 걸쳐 등장한다. 역대 전직 대통령들이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 것과 대조된다.
특히 국방부는 교재에서 이 전 대통령이 “혼란스러운 국내·외 상황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선도” “이승만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혜안과 정치적 결단으로 공산주의 확산을 막았다”고 평가했다. 독재와 3·15 부정선거, 4·19혁명으로 하야한 사실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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