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로 인한 영혼 정화 기대했는데...식상한 불륜을 어찌할꼬('마에스트라')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12. 2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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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는 과연 불륜과 불치도 지휘해낼 수 있을까(‘마에스트라’)

[엔터미디어=정덕현] 이건 마치 불륜과 불치와 맞서는 이영애의 고군분투를 보는 듯하다. tvN 토일드라마 <마에스트라>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먼저 잡아끈 건 지휘봉을 든 이영애의 모습이었다. 음악에 심취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그 면면은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을 떠올리게 했다. 실로 그가 지휘할 드라마가 어떤 모습일 지를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불륜 코드'가 전면에 배치되면서 불안으로 바뀌었다. 해외에서 돌아온 차세음(이영애)을 반가워하는 자상한 남편인 줄 알았는데 김필(김영재)은 차세음이 맡게 된 더 한강 필하모닉의 단원 중 한 명인 이아진(이시원)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게다가 차세음의 옛 연인이었던 성공한 사업가인 유정재(이무생)이 이미 유부녀인 차세음에게 노골적으로 대쉬한다. 더 한강 필하모닉을 사버리고 차세음의 인생에 들어오려 한다.

이아진은 심지어 아이까지 갖게 된 상황을 차세음에게 알리고 자신은 아이를 낳을 것이며 이혼을 종용하기까지 한다. 아내가 버젓이 있는데 이런 주장을 하는 뻔뻔한 내연녀의 등장은 드라마에 치정극의 색깔을 드리워 놓는다. 여기에 불륜을 저질렀다고는 하나 차세음의 남편인 김필에게 주먹질을 하는 유정재의 모습은 그저 순정이라고 하기엔 지나친 행위처럼 보인다. 그건 '내로남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륜 코드에 <마에스트라>는 불치 코드까지 넣었다. 어머니가 앓은 래밍턴병이 유전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그것이다. 그건 50%의 확률이지만, 최고의 지휘자라는 위치는 그 확률만으로도 그가 맡은 오케스트라는 물론이고 지휘자 자신의 커리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바이올린을 했지만 병 때문에 모든 걸 잃어버린 어머니처럼 자신도 똑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차세음을 흔들리게 만든다.

불륜에 불치 코드가 더해지면서, 김필은 차세음이 50%의 확률로 래밍턴병이 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약점 잡으려 한다. 이혼을 요구하는 차세음이 도와줘 작곡을 할 수 있게 된 김필은 불륜으로 아이까지 생겼으면서도 아내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병을 협박용 무기로 활용해, 시위하듯 요양원에 있는 차세음의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오케스트라 단원들 앞에 그 실체를 폭로하기도 한다.

이러니 애초 클래식 지휘라는 소재가 만들어냈던 기대감에서 <마에스트라>는 자꾸만 빗겨 나간다.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하모니가 울려 퍼질 줄 알았는데, 불륜과 불치 코드라는 식상함이 전면에 등장하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불편함이 불협화음이 되어 신경을 자극한다. 모든 것들이 차세음을 공격해오는 상황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일편단심 그녀의 편이 되어주는 유정재가 순정을 보이지만, 그것 역시 정상적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보통 이런 정도의 설정이라면, 벌써부터 시청자들은 외면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힘은 여전히 차세음 역할을 연기하는 이영애 때문이다. 그는 물론 불륜과 불치 앞에서 속으로는 엄청난 상처와 고통을 받았을지 몰라도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속으로 혼자만 삭이고 그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황에 이끌리기보다는 상황을 주도하려 한다.

그에게는 오로지 오케스트라와 음악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불륜을 저질렀지만 자신의 오케스트라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김필의 작곡을 도와 완성시키고, 내연녀가 찾아와 임신한 사실까지 들이밀며 도발해도 공연 준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또 전 연인이라는 이유로 자꾸만 선을 넘고 들어와 자신을 애써 챙기려는 유정재 앞에서도 그는 선을 긋는다. 사적 관계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한강필을 후원하는 회장님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그 차가움이 불륜과 불치라는 불편한 뜨거움을 식혀 놓는다.

그래서 <마에스트라>는 불륜이니 불치니 하는 식상하고 속물적인 상황들 속에서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이 하려는 예술혼을 끝까지 밀고 나가고 그래서 자신의 삶 또한 자신이 지휘해내려는 한 인간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그건 또한 불륜과 불치라는 식상함과 이영애라는 배우의 냉철한 아우라가 맞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이영애는 불륜과 불치도 지휘해낼 수 있을까. 불편함과 불안감 속에 생겨나는 작은 기대감은 온전히 여기서 나온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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