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연말 결산①] 송혜교·전도연·고현정…빛난 여성 파워
드라마 제작사들, 여성 서사에 '집중'
"아직 현역 뒷편으로 보내지 말아주세요."
고현정, '마스크걸' 인터뷰
2023년은 여성 배우들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혜교 임지연 전도연 고현정 엄정화 라미란, 최근의 이영애까지 여성 주체 서사 드라마들이 매 분기마다 열풍을 자아냈다. 유독 올해에는 여성 배우들의 강세가 짙었는데 돌아온 언니들을 향해 열렬한 지지가 쏟아지는 중이다.
올해 최고의 화제성을 견인한 드라마는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문동은(송혜교)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넷플릭스 공개 당시 총 13주 동안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시리즈(비영어) 랭킹에 오르며 전 세계를 강타했다. 수상 낭보도 쏟아졌다. 지난 4월에도 제59회 백상예술대상 드라마 작품상 수상 후 제29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의 최우수 외국어 시리즈 부문 후보에도 오르며 국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또 최근 AACA에서 2관왕의 영예를 얻었다.
특히 '더 글로리'는 송혜교에게는 유독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작품이다. '태양의 후예' 이후 다시 김은숙 작가와 조우했을 뿐만 아니라 첫 장르물 도전이기 때문이다. 송혜교는 '더 글로리'를 두고 너무나 하고 싶었던 장르와 캐릭터였다면서 긴 배우 인생에서 느꼈던 갈증을 넌지시 밝힌 바 있다. 기존 멜로드라마에서 주로 활약했던 송혜교에게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됐으며 또 다른 얼굴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회로 남았다.
송혜교에 이어 전도연도 올해 유독 빛나는 시기를 가졌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전도연의 주연작 tvN '일타 스캔들'은 시청시간 2억 3,480만 시간을 기록했다. 2021년 '인간실격' 이후 드라마 복귀를 알린 전도연에게 큰 관심이 모였으나 1회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4%대로 출발했다. 그러나 입소문이 점차 나기 시작하면서 4회 7%, 5회 10%를 넘겼으며 매회 전 채널에서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드라마 '인간실격'과 영화 '길복순' 이후 만난 '일타 스캔들'에서 전도연은 주 무기인 러블리함을 내세웠고 이는 시청자들을 톡톡히 사로잡았다. 생활력 강한 여성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완성했고 전도연의 진가는 다시금 인정받았다. 전도연을 수식하는 '칸의 여왕' 이후 다시 만난 인생 캐릭터다. 전도연은 '일타 스캔들' 종영 인터뷰에서 전도연은 '밀양' 이후 주로 무게감 있는 드라마와 역할을 맡았던 것을 두고 "그동안 제 이미지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었다. 다양한 장르를 할 수 있었다면 했겠지만 선택이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라면서 '일타 스캔들'로 얻은 것들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모미라는 인물이 파국의 소용돌이 안에서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고현정은 3인 1역 연기라는 파격적인 캐스팅에 나섰다. 이후 고현정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김모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는 과정에서 죄수의 삶에 익숙해진 인물의 초연한 얼굴을 설득력 있게 완성했기 때문이다. 앞서와 비슷하게 고현정 역시 연기적인 고민에 빠졌던 시기에 '마스크걸'을 만났고 자신을 지우고 캐릭터로 남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고현정의 노고가 담긴 '마스크걸'은 공개 2주 차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TV(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하며 72개국 TOP 10 리스트에 랭크됐다. 주역들의 강렬한 연기와 사회 비판과 블랙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와 외모 지상주의, 학교 폭력을 비롯한 폭넓은 주제를 다루면서 높은 완성도를 선보였다.
이처럼 여성 배우들이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여성 캐릭터를 찾는 대중의 니즈 때문이다. 여성 캐릭터의 주체적인 서사가 어느덧 이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 관계자는 본지에 "기획 단계, 대본을 발전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서사를 중시하는 방향성으로 평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슈룹' '작은 아씨들'에 이어 올해 스튜디오 드래곤이 기획한 여성 주체 서사 드라마는 '소용없어 거짓말' '일타 스캔들' '더 글로리' '무인도의 디바', 그리고 최근 방영 중인 '마에스트라'까지 약 10편 이상이다. SBS 관계자 또한 "편성과 기획에 있어서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성 이야기를 찾고 있다"라면서 여성 서사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 역시 여성 콘텐츠에 힘을 쏟고 있다. 카카오엔터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여성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변화함에 따라, 이를 반영한 콘텐츠들이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K콘텐츠가 글로벌 전역에서 인기를 얻으며 남녀 간의 로맨스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작품들이 인기를 끌 수 있는 시청 기반이 만들어지면서 이전보다 더욱 다채로운 여성 서사 작품들의 흥행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라고 짚었다.
이어 "글로벌 시청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스토리의 콘텐츠를 기획, 개발하고 있으며, 그 중 최근에는 '무인도의 디바' '은중과 상연' 등 여성 서사를 다룬 작품들도 있다. 여성이라는 성별 보다는, 캐릭터 자체의 매력과 개성에 집중해 그려내는 작품들도, 작품 속에서 보여질 그들의 꿈과 직업, 관계 등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감동과 웃음을 전할테니 기대해달라"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우다빈 기자 ekqls064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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