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2023 l 올해 지나기 전 꼭 들어봐야 할 앨범들
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어느 나라의 대중음악계든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 또는 메이저와 인디로도 표현되는 이 구분은 자칫 음악의 질이 담보된 평가의 결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다. 주류와 비주류란 그저 마케팅 효과에 기반한 지명도의 차이일 뿐, 그 안에서 미학적 판단이나 예술적 우열을 가려내려는 건 허사다. 설령 가려낸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주관적 평가, 개인의 취향일 따름이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표가 될 순 없다.
2023년도 이제 막바지. 매해 끝 약속처럼 오는 '결산 시즌'이 올해도 어김없이 수작과 범작의 구분을 종용하고 있다. 필자의 2023년도 마지막 글도 그 구분을 위해 할애하려 한다. 좋은 앨범들이 너무 많았지만 여러분들이 꼭 한 번, 이미 들어봤다면 한 번 더 들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르 불문 개인적인 국내 다섯 장을 꼽아봤다. 이 글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저 좋은 '음악'만 있을 뿐이다.
빈지노 'NOWITZKI'
이센스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데다 무려 7년 만에 내는 정규작이라 팬들의 기대감이 부풀다 못해 이미 다 터져버렸던 작품이다. 나는 한정반으로 이걸 샀는데 보너스 트랙까지 스무 트랙에 러닝타임은 63분 30초를 찍었다.
2년 여가 예고 됐고 2년 가까이를 작업해 온 '노비츠키(NOWITZKI)'는 1998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프로농구(NBA)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활약한 독일 출신 장신(213cm) 파워포워드 디르크 노비츠키(Dirk Werner Nowitzki)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원래는 아내 이름(STEFANIE)을 쓰려했지만 당사자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바꾼 것인데, 스테파니는 비록 제목에선 사라졌지만 이미지로 앨범에 들어가 있다.
'Monet'에서 다뤘듯 빈지노에게 이 앨범은 '세상이 이번 앨범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신경을 끄고 순수하게 자신을 찾는' 작업이었다. 한마디로 인생의 타임라인을 반추해 보겠다는 것인데 그 안에선 군대 가기 전(2017년)부터 2022년까지 경험한 일, 가졌던 생각, 스쳐 보낸 찰나를 포함해 부모님의 이혼 뒤 맞은 아빠와의 이별(그리고 갑작스레 청산한 외국 생활 및 귀국), 어린 시절 개장수에게 팔려간 반려견과의 헤어짐 등을 다뤘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여서 난해함이 필연처럼 따른 만큼 빈지노는 에이셉 라키, 드레이크 같은 존재로 머물러 주길 바라는 다수의 뜻과 달리 피카소처럼 사조를 찢거나 벡이나 데이비드 보위 마냥 사조를 창조하겠다는 의지를 '노비츠키'로 내비쳤다. 그린플로의 'I Got'cha'를 샘플링한 '침대에서/막걸리'가 스네어 드럼과 하이햇 심벌을 죽처럼 짓이기며 뿜어낸 빈티지 바이브, 'Sanso (Interlude)'를 프로듀싱한 벤 에서가 권해 샘플링한 김정미의 '햇님', 그리고 괴기스러운 백현진의 피처링이 다 그걸 위해 동원한 수단들이었다.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 '64 see me'
록과 블루스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앨범이지만 그 외 사람들에겐 낯설 작품이다. '육회'를 뜻하는 한일 복합어 육사시미(肉刺身)를 숫자와 영어로 표현한 앨범 제목에서 벌써 께름칙하다 싶은 사람들도 있으리라. 심지어 그 제목을 마트에 파는 고깃덩어리 이미지로 내다 놨으니. 누군가에겐 음악과 별개로 첫인상부터 비호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 그렇듯 겉만 보고 이 앨범을 지나치진 마시라. 불세출의 보컬리스트 박근홍을 중심으로 각자 파트에서 어디에 내놔도 아쉽지 않을 연주자들이 록과 솔, 블루스로 무장해 재즈의 즉흥성을 돌파한다. 흐른 뒤 사라지고 마는 음악이라는 예술의 본질을 때론 거칠게 때론 온화하게 건드린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정규작. 보통 한 곡에 드는 비용과 시간(1시간 40분) 안에 여덟 곡을 뽑아낸 이들은 서태지, 빅뱅, 카더가든 등과 작업한 엔지니어 오형석의 똑 부러지는 손맛을 거쳐 본인들에게도 장르 팬들에게도 잊을 수 없을 2023년을 선물했다.
푸디토리움 'Episode : Hope'
2023년 2월 23일에 발매한 앨범에 관해 2023년 12월 23일에 쓰고 있다. 같은 해 초입 저물어 가는 겨울에 나온 앨범을 그해 연말 다시 찾아오는 겨울에 다루고 있는 셈이다. 12년 전 앨범 제목처럼 '재회(再會)'한 겨울은 12년 뒤 신곡 'My Heart to You'의 피아노 연주 위에서 두 배로 스산하다. 김정범(푸디토리움)이 밝혔듯 자신이 지금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에서 생기는 듯한 감정이라는 '바람(Hope)'의 거처가 그렇게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더한 피아노 콰르텟을 타고 청자의 고막에 솜눈처럼 쌓여 간다.
쌓여 간다는 건 이 앨범에서 중요하다. 그는 싱글의 시대에 스튜디오 정규작을 고집하며 자신이 과거 누군가의 앨범을 다 듣고 난 뒤 사로잡히곤 했던 '커다란 감정'에 자신의 팬들도 사로잡혀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세 번째 에피소드를 발매했다. 그 감정의 밀도를 재현하기 위해 연주자들이 한 공간에서 녹음하는 프로덕션을 택한 푸디토리움은 정재일, 요요마와 작업한 엔지니어 강효민(녹음, 믹스)과 그래미상 후보에도 오른 남상욱(마스터링)의 소리 조각에 힘입어 멜로디로 이미지를 빚어내는 창작 및 연주자로서 자신이 다다른 경지를 무심히 들려준다. 스스로의 정수를 향해 차분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음악의 아름다운 집념이 이 한 장에 담겨 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차 한 잔 손에 쥐고 이 '앨범'을 '끝까지' 들어보라. 평안과 위안이 곁을 내줄 것이다.
정밀아 '리버사이드'
정밀아의 음악은 느리고 쓸쓸하다. 따뜻하고 슬프다. 그것은 현실의 한복판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스토리텔링이다. 많을 땐 600번도 고친다는 가사를 또박또박 들려주고 그 노래를 가만가만 들어주는 쌍방의 관계가 중요한 음악이다 보니 프로덕션은 곁에서 부르는 듯 현장감을 중시한다.
네 번째 앨범 '리버사이드'는 지난 세 장의 연장이면서 진화이다. 진화는 사운드에서 이뤄졌고 메시지는 여전하여 연장됐다. 현장과 현재를 잊지 않으려는 이 느슨한 통곡의 발라드는 빠르고 즉흥적인 것들에만 관심을 주는 세상의 뒷덜미를 낚아채려는 소소한 의지다. 우린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살며 세상은 어디로 가는가. 가끔은 이런 것도 물어가며 살아야 '인간의 삶'이 아닐까 하는 정밀아 음악의 견고한 자문이다.
눈물을 흘리기 직전까지 사색하고 흘릴 눈물은 듣는 사람의 몫으로 남기는 이 노래를 물론 모두가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약자의 편에서, 소외된 자의 편에서 위로를 건네거나 '구구' 같은 곡처럼 때론 세태를 꾸짖는 그 의도에 반드시 공감할 필요도 없다. 그저 이런 깨끗한 양질의 노래도 케이팝 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만 가준들 소개한 입장에선 족하다. 음악을 만든 이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뉴진스 'Get Up'
올해 미국 롤라팔루자와 일본 서머소닉 무대는 뉴진스의 실력과 인기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두 무대 다 감상해본 바 국적에 둔감한 음악이라는 공통 언어는 타국의 청춘들을 확실히 사로잡은 듯했다. 이 과업은 자신들이 왜 계속 주목받아야 할 그룹인지의 증명이어야 했던 두 번째 EP 'Get Up'에 설득력 있는 주석이 돼주었다.
'Get Up'의 앨범 커버, 즉 80~90년대 전자 오락실을 떠올리게 하는 픽셀 아트워크는 처음부터 콘셉트로 삼아 이젠 무기가 된 레트로 감성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그룹의 의지로 읽힌다. 그런 뉴진스의 강점은 눈보다 귀를 사로잡는 데 있다. 어떨 땐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고 들을 때 그 매력이 배가 될 수 있다는 건 뉴진스 음악이 음악 자체로서 가치를 지녔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한마디로 음악이 영화와 차별화되는 가장 강력한 지점, 즉 리듬과 비트, 멜로디와 노랫말을 통해 듣는 사람의 감정과 상상을 건드리는 음악 본연의 입장을 뉴진스의 음악은 원칙처럼 지키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신선하고 쿨하면서도 세련되고 차분한 분위기, 청춘의 소리이면서 10대 시절 질풍노도를 우회해 완벽하게 정돈, 통제된 방식으로" 음악을 전달한다고 쓴 NME의 평가나, 피치포크가 드럼 앤 베이스 트랙 'Super Shy'를 논하며 소녀들이 느끼길 원하는 "칼리 레이 젭슨 풍 소망의 현기증과 조바심"을 언급한 데서도 어느 정도 설명되고 있다. 이질적인 신스 비트와 보컬 라인으로 앨범을 마무리 짓는 'ASAP'은 그런 뉴진스 음악이 다음 앨범에선 어떤 식으로 뻗어갈 지에 관한 비밀스러운 예고편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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