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스포츠 인물] 오타니·메시와 어깨 나란히 한 ‘페이커’
중국 측의 260억 연봉 제의 거절하기도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페이커. e스포츠 혹은 롤(LoL·League of Legend)을 모른다 해도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영국 '더 타임스'가 최근 '페이커' 이상혁(27)을 세계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명 중 1명으로 꼽기도 했다. 10명 중에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역사상 최고액(10년 7억 달러)으로 LA 다저스와 계약한 오타니 쇼헤이(일본),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상을 올해 무려 8번째 수상한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등이 있다.
페이커가 메시나 오타니 같은 국제적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겠지만, 실제 그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국가대표로 참가한 항저우아시안게임 때는 각국 선수들의 사진촬영과 사인 요청으로 식사 시간을 놓치기도 했다. 남자골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장유빈은 아시안게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선수촌에서 평소 팬이었던 페이커의 사인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사저널이 '2023 올해의 인물' 스포츠 분야에서 이강인(축구), 이정후(야구), 안세영(배드민턴), 신유빈(탁구)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을 뒤로한 채 이상혁을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이 들면 e스포츠 선수 생명 다한다는 인식도 깨부숴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페이커의 인기는 국내에서 역대 3번째로 열린 LoL월드챔피언십(롤드컵·축구 월드컵에 빗댄 말) 결승전에서도 증명됐다. 경기가 열린 서울 고척 스카이돔 1만8000여 좌석은 예매 시작 20분 만에 매진됐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거리응원이 펼쳐졌는데 서울시 추산 1만여 명의 팬이 모였다. 온라인 생중계 동시 접속자 수는 전 세계 1억 명이 넘었다. 이러한 관심의 중심에는 페이커가 있다. 페이커는 2030세대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인 셈이다.
페이커의 인기는 오롯이 실력에서 비롯한다. 17세이던 2013년부터 T1 소속으로 있는 그는 올해 우승 포함해 롤드컵 역대 최다 챔피언(4회)이 됐고, 롤드컵 사상 최초 2회 연속 우승, 롤한국챔피언십 최초 3회 연속 우승, 롤한국챔피언십 최다 우승(10회)의 기록을 썼다. 나이가 들면 손가락 움직임이 둔화해 e스포츠 선수로서의 생명이 다한다는 인식도 깨부수고 있다. 롤 최연소(17세) 우승 기록과 함께 최고령(27세) 우승 기록도 올해 세웠다. 페이커의 현재 연봉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75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2021년 중국 측으로부터 연봉 2000만 달러(약 260억원)의 이적 제의를 받았으나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LoL은 2009년 미국 라이엇 게임즈가 출시한 온라인 전투게임이다. 5대5로 팀을 이뤄 싸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때는 시범종목이었으나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2023년 9월 개최) 때는 정식종목이 됐다. 페이커는 2018년에는 중국팀에 패해 은메달을 땄으나 항저우 대회 때는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페이커는 공익근무요원 장기대기로 대회 전에 이미 군 문제를 해결한 상황이었다.
'더 타임스'는 페이커에 대해 "'불사대마왕(The Unkillable Demon King)'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우사인 볼트처럼 올림픽의 주류 스타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평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사람을 죽이는 묘사가 담긴 게임은 올림픽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다"며 LoL의 올림픽 종목 편성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올림픽 경기 시청층이 점점 고령화하는 상황에서 e스포츠만큼 젊은 층의 관심을 끌어올 수 있는 것도 없다.
페이커는 "보통 스포츠라고 하면 몸을 움직여 활동하는 게 기존 관념인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기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께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쟁하는 모습이 영감을 일으킨다면, 그게 스포츠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시사저널 선정 '올해의 인물' 1989년 창간 이후 35회째…'대한민국의 역사'로 기록
손흥민, 스포츠 인물로는 역대 두 번째 '올해의 인물'로 선정…정치 한동훈·경제 정의선 등도 두각
시사저널이 선정한 2023 올해의 인물은 손흥민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의 주장이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주장인 손흥민은 '영원한 캡틴'으로 기억되고 있다. 정쟁만 거듭하는 정치, 고물가·고금리에 시름하는 경제, 팬데믹과 인구절벽으로 우울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 폭풍 질주로 골네트를 시원하게 가르는 손흥민의 활약은 그나마 통쾌함을 선사하는 위안이었다.
스포츠 인물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1997년 차범근 축구 국가대표 감독 이후 두 번째다. 당시 차 감독은 대한민국을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로 이끌면서 크게 각광받았다. 시사저널은 1989년 창간 이후 매년 12월 송년호에 올해의 인물을 선정해 발표해 오고 있다. 올해도 역시 시사저널 편집국 기자들의 투표와 정기독자들에 대한 설문조사 등을 토대로 올해의 인물을 비롯한 총 9개 분야에 걸쳐 한 해 동안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가장 컸던 인물들을 선정했다.
손흥민을 비롯해 각 분야별로는 정치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경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회 신준호 안산지청 차장, 국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문화 한강 작가, IT·의·과학 고규영 KAIST 특훈교수, 연예 임영웅 가수, 스포츠 페이커 등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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